논증이 필요한 이유
대학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글의 종류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 ‘논증하는 글’이다. 학술적 논문은 말할 것도 없고 교양이나 전공수업의 글쓰기 과제 대부분이 논증적 글쓰기를 요구한다. 논문에서부터 글쓰기 형식으로 요구되는 다양한 종류의 시험 답안에 이르기까지 논증적 글의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하다. 하지만 그 핵심이 논증이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왜 대학의 글쓰기는 논증을 요구할까? 그것은 대학 교육의 기초역량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논증 능력은 전공 영역 대부분 학술활동의 기본이다. 연구를 진행하고 그 성과를 정리하여 인정받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주장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논증과 다르지 않다. 나아가 논증은 오늘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사고나 비판적 사고 향상을 위해서도 훈련되어야 할 기본능력이다.
논증이란?
• 논증의 정의
논증하는 글을 쓰기 위해 먼저 논증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논증’(argumentation)은 ‘주장과 정당화 근거로 이루어진 명제들의 집합’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논증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식에 따라 연역논증과 귀납논증으로 구별된다. 이 정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논증에는 반드시 주장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제와 결론으로 이루어져 마치 논증처럼 보이는 일련의 명제들도 그 속에 명확한 주장이 없다면 그것은 논증이라 볼 수 없다. 명확한 주장이 존재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을 때 비로소 논증의 자격을 갖게 된다.
• 논증과 논증 아닌 것의 차이
논증하는 글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주의해야 할 점은 글 속에 논증을 구현하는 것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보이는 글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논증이 들어있지 않은 글은 논증하는 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는 ‘논증’을 ‘인과적 설명’(causal explanation)과 비교할 때 좀 더 잘 드러난다. 다음 예를 보자.
(1) 간밤에 친 벼락 때문에 운동장에 있는 백년 된 고목나무가 쓰러졌다
(2) 운동장에 있는 백년 된 고목나무가 쓰러진 것을 보니 간밤에 벼락이 친 것이 틀림없다.
(1)과 (2)는 일견 동일한 사태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둘 다 간밤에 벼락이 쳤고 고목나무가 쓰러진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두 문장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문장 (1)은 운동장의 고목나무가 왜 쓰러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면, 문장 (2)는 간밤에 벼락이 쳤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 (1)에서 ‘운동장의 고목나무가 쓰러졌다’는 것은 설명되어야할 내용(피설명항)이고 ‘번개가 쳤다’는 것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설명(설명항)이다. 즉 문장 (1)은 ‘피설명항 + 설명항’으로 이루어진 인과적 설명이다.
반면 문장 (2)에는 ‘간밤에 벼락이 쳤다’는 사실에 대한 글쓴이의 확신, 즉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운동장의 고목나무가 쓰러졌다’는 것은 ‘벼락이 쳤다’는 생각이 왜 옳은 지를 뒷받침해주는 증거이다, 그렇기에 이 문장은 ‘주장 + 정당화 근거’로 이루어진 논증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례는 유사한 내용 전달이 논증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논증이 되려면 반드시 주장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 주장을 정당화해 줄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tip
논증을 시작하기 전 개요부터!
글을 시작하기 전 내 글의 주장과 근거들에 관한 개요를 먼저 작성하면 주장이 분명히 드러나는 논증적 글을 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근거의 적절성에 대해서도 미리 판단하여 강한 논증을 구성할 수 있다.
더 알아보기
연역논증과 귀납논증
연역논증:
결론의 내용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이미 전제 속에 포함되어 있어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필연적으로 참이 되는 형태의 논증이다. 연역논증은 새로운 지식의 확장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전제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내용을 명확히 하는 효과가 있다. 전제에 포함된 내용을 올바르게 이끌어낸 연역논증은 타당한 논증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 부당한 논증이 된다. 연역논증의 예로는 삼단논법이 있다.
귀납논증:
전제가 참이라고 해도 결론이 필연적 참이라고 할 수 없는 형태의 논증이다. 귀납논증은 전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결론에서 이끌어 냄으로서 지식의 확장을 가져다주고 필연적 참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개연적 참을 이야기 할 수는 있다. 따라서 귀납논증에서는 필연적 참을 의미하는 타당성을 말할 수는 없지만 개연성의 강도를 의미하는 합당성을 평가할 수 있다. 귀납적 일반화, 통계적 삼단논법, 유비추리 등이 귀납논증에 속한다.
논증하기의 3원칙
논증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제 논증하는 글에서 유의해야할 점을 살펴보자. 그것은 크게 다음 세 개의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논증이 글 속에 잘 드러나도록 하라.
2. 가능한 더 강한 논증을 구성하라.
3. 반론을 고려하라.
• 논증하기의 첫째 원칙
첫째 원칙은 글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논증적 글쓰기란 글 속에 논증을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논증하는 글에는 반드시 논증의 형식이 드러나야 한다. 다시 말해 글쓴이의 주장과 그 주장에 대한 근거가 글 속에 명확히 표현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논증을 명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달리 말해 주장과 정당화 근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게 논증인 글 중에서 논증이 잘 드러난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물음의 답은 논증적 글쓰기의 목적에서 찾을 수 있다. 논증적 글의 목적을 고려한 글쓰기가 논증을 잘 드러내는데 있어 훨씬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논증적 글의 중요 목적은 글쓴이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리는 것 보다는 그 주장이 왜 정당한지 독자를 설득하는데 있다, 이를 독자 입장에서 달리 표현해보자면, 논증적 글을 읽는 목적은 글쓴이의 견해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관점을 얼마나 잘 옹호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논증적 글은 두괄식으로 작성할 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두괄식 글은 자신의 주장을 먼저 밝히고 그에 대한 근거를 이어서 설명하는 형식이다. 이런 형식의 글에서는 글쓴이의 주장을 파악하는 일보다 그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다시 말해 논증이 얼마나 성공적인지에 집중할 수 있다. 반면 글 속에 주장이 먼저 드러나지 않는 경우 독자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따지기 보다는 주장 자체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확률이 높다.
tip
논증하는 글은 두괄식으로!
글쓴이의 주장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 주장을 정당화 시키는지 이해하기 쉬운 글은 주장이 먼저 등장하는 두괄식 글이다.
• 논증하기의 둘째 원칙
논증적 글쓰기에서 유의해야 할 둘째 원칙은 강한 논증을 구성하는 것이다. 강한 논증이 필요한 이유는 논증이 강할수록 더 성공적인 논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한 논증이란 어떤 것일까? 논증에는, 정확히 말해 귀납 논증에는 강도가 존재한다. 물론 연역 논증에는 강도가 없다. 그것은 타당하거나 부당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귀납 논증은 강하거나 그 보다 더 강할 수 있고 혹은 약하거나 그 보다 더 약할 수 있어서 일종의 스펙트럼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논증의 강도를 결정하는 것일까?
알다시피 논증은 주장과 정당화 근거로 이루어져 있다. 논증의 강도는 그 논증을 구성하는 주장과 근거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다음 예를 보자.
전제/정당화 근거:
(첫 번째) a라는 까마귀는 검다
(두 번째) b라는 까마귀는 검다
(세 번째) c라는 까마귀는 검다
.
.
.
(n 번째) x라는 까마귀는 검다
결론/주장:
그러므로 모든 까마귀는 검다
전제와 결론으로 이루어진 이 사례는 주장과 정당화 근거로 이루어진 일종의 논증이다. 여기서 결론은 논증의 주장이고 전제는 주장에 대한 근거이다. 이때 논증의 강도는 이들 전제와 결론의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주장과 정당화 근거가 갖는 강도들의 관계식에 의해 논증의 강도는 달라진다. 이들 관계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주장의 강도가 동일한 경우: 정당화 근거의 강도가 강할수록 논증은 더 강해진다.
2) 정당화 근거의 강도가 동일한 경우: 주장의 강도가 약할수록 논증의 강도는 오히려 강해진다.
이를 앞의 사례를 통해 설명해보자. 먼저 1)에서 말하는 결론의 주장이 ‘모든 까마귀는 검다’로 동일한 경우를 생각해보라. 이때에는 전제의 강도가 강할수록 강한 논증이 된다. 전제의 강도가 강하다는 것은 결론의 주장을 전제가 얼마나 충분히 뒷받침 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이 논증의 경우는 n이 클수록 전제의 사례가 많아 논증은 강화된다. 더 많은 숫자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낼수록 결론은 더 탄탄한 지지를 받지만 너무 적은 숫자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오히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반면 전제의 강도가 동일한 2)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때는 결론의 강도가 강할수록 논증의 강도는 오히려 약해진다. 앞의 사례에서 관찰된 까마귀의 수가 n으로 동일할 때 이로부터 “모든 까마귀는 검다”와 “대부분의 까마귀는 검다”라고 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 추론일까?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떤 결론에 더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당연히 후자의 논증이다. 이는 후자가 더 약한 주장을 하였지만 논증의 강도는 오히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강한 논증을 위해서는 주장의 근거에 해당하는 전제를 잘 구성하는 것 못지않게 주장의 강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강한 주장을 하는 것은 자신의 논증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정해져 있다면 거기에 적절한 강도의 주장을 할 때 강한 논증을 구성할 수 있다.
이것만은 꼭!
강한 논증을 위한 최소 원칙
1. 논증을 하는 일은 강한 논증을 구성하기 위한 것이지 강한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2. 주장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복수의 근거가 존재할 때 주장을 가장 잘 뒷받침해주는 근거 순으로 논증을 구성해야 논증이 강화된다.
3. 귀납논증에서 주장이 강하면 논증의 강도는 오히려 약해지기에 근거가 잘 뒷받침하는 적절한 주장을 해야 한다.
• 논증하기의 셋째 원칙
논증적 글쓰기에서 유의해야 할 셋째 원칙은 ‘반론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반론을 고려한다는 것은 매우 예리한 누군가의 문제제기에 답하는 일이다, 좋은 논증적 글이 되기 위해서는 반대 입장에 맞서 자신을 얼마나 잘 옹호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즉 제시될 수 있는 반론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 자신의 입장을 계속 견지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론이 갖는 오류를 지적할 수도 있고 자신의 입장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할 수도 있으며 필요하다면 자신의 근거에 약간의 수정을 가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답변을 통해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충분함을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흔히 반론을 고려하라고 하면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반대주장을 검토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의 검토는 실상 자신의 논증을 강화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반대 주장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근거에 대한 반대의견을 반박할 때 비로소 자신의 논증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예를 보자.
사례 <1>
주장 A: 원자력 발전에 찬성한다.
근거 a: 원자력 발전은 저 비용으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효율이 높은 에너지 정책이다,
근거 b: 원자력 발전은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다.
사례 <2>
주장 -A: 원자력 발전에 반대한다.
근거 c: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예상치 못한 자연 재해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 올 수 있다.
근거 d: 원전 폐기물 처리시설 건설과 유지에 엄청난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
<1>과 <2>는 서로 반대 주장을 펼치는 두 개의 다른 논증이다. <1>은 원자력 발전에 찬성하는 주장 A를, <2>는 반대하는 주장 –A를 각각 두 개의 근거 a, b와 c, d로 뒷받침하고 있다. 이때 논증 <1>에 대한 반론을 고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반대주장 –A를 펼치는 <2>와 같은 논증들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주장 A의 근거인 a와 b에 대한 반대의견을 고려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논증 <1>의 강도는 주장 A와 근거 a, b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만일 근거 a, b가 반대의견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원자력 발전이 실제로는 전기사용료를 낮춰주지 못한다는 증거가 있거나 다른 이유로 인해 경제적 효율이 높지 않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근거 a를 들어 주장 A가 옳음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근거 a에 반대의견을 가진 이에게 어떤 이유에서 여전히 근거 a가 옳은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논증 <1>의 강도는 더 강화되거나 적어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반대주장 –A를 검토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2>와 같이 원자력 발전에 반대 주장을 펼치는 논증이 어떤 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반론을 검토하는 일이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수많은 논증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 되고 만다. 설령 논증 <2>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성공적으로 설명했다고 해도 다른 근거를 들어 반대주장 –A를 펼치는 제3의 논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은 끝없는 싸움이 될 것이며 실제로도 논증 <1>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논증적 글의 목적은 모든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 있지 않고 얼마나 자신의 입장을 잘 옹호했는지 보여주는데 있다. 따라서 반론을 고려하는 것 역시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이 모두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론을 고려하는 것은 나의 논증에 문제제기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나의 주장이 유효함을 밝히기 위한 것이고 이를 통해 나의 논증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