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의 의미
서평이란 무엇인가?
서평은 독후감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독후감과 서평은 모두 책을 읽은 후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쓴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독후감이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서평은 책에 대해 타인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설득하기 위한 글로서, 독후감보다 공적이고 체계적인 성격을 띤다. 그래서 서평은 ‘내’가 받은 감동이나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점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목하거나 함께 고민해 볼 만한 보편적인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 서평이란 책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이 아니라 책에 대한 이해와 비평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글이다.
독후감과 서평 비교 예시
[예문 1]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읽으면서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문화를 잃어 가는 라다크 사회의 변화가 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라다크의 일부 사람들은 라다크 문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니 다행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또한 서구 문화를 많이 의식하기도 하는데, 나도 그런 경향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게 되었다. |
[예문 2]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의 저자가 현대 산업 문명의 폭력성과 파괴성을 깨달은 일부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사회 발전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반개발(counter-development)’이라는 개념이다. ‘반개발’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탈중심화와 적정 기술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녹색 운동의 고전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기본 메시지이기도 하다. 권력의 집중화와 문화적 획일화는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생태적으로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건전한 사회의 발전에 대한 모색이 권력의 비집중화와 적정 기술의 개발로 표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김종철, 「옮긴이의 말」 일부 |
위의 [예문 1]은 독후감이고, [예문 2]는 동일한 책을 대상으로 한 서평이다. [예문 1]이 책의 독자로서 느낀 안타까움, 다행스러움, 자기반성 등 개인적인 소감을 담고 있다면, [예문 2]는 책의 저자가 제시한 개념, 저자와 유사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다른 사례, 저자의 아이디어가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점 등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서평은 ‘나’와 책의 관계보다는 ‘우리’ 모두와 책의 관계를 전제로 하여 작성된다.
서평에 서평자의 의견을 쓰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서평에는 서평자만의 의견이 반드시 담겨 있어야 한다. 단, 이때의 ‘의견’이란 안타까움, 다행스러움과 같은 개인적인 소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의 의의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판단할 때 자연스럽게 개입되는 서평자의 관점이나 가치관을 말한다. 즉 서평의 내용은 서평자의 개인적인 가치 판단을 포함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서술되고 구체적인 논거로써 뒷받침되어야 한다.
왜 서평을 쓰는가?
– 책의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우리 동네 약국의 위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줄거리와 특징, 내가 자주 하는 게임의 규칙 등, 내가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보자. 어떤 대상을 잘 안다는 것은 누군가 그것에 대해 질문했을 때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도 같다. 어떤 책에 대해 잘 안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한 차례 정독했다고 해서 내가 곧장 그 책에 대해 잘 알게 되지는 않으며, 때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책의 내용을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한다. 읽은 책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책의 메시지를 간직할 수 있으려면, 책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고 그 내용을 자신의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서평쓰기는 서평자 본인에게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쌓게 해 주는 활동이다.
– 독자들에게 ‘미리 읽기’나 ‘다시 읽기’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서평은 서평자 본인에게도 유익한 글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독서 기록을 위한 글이 아니라 다른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다. 서평을 읽는 독자들에게 서평은 책의‘미리 읽기’ 또는 ‘다시 읽기’를 제공한다.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서평은 ‘미리 읽기’, 즉 책에 접근할 수 있는 선(先)이해를 제공한다. 도서 판매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책의 제목, 저자 이름, 간단한 책 소개와 같은 정보만으로는 그 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와 한계를 지니며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 수 있는지를 알기 어렵다. 서평은 책 내용의 요약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사회적 맥락들, 책의 핵심 메시지에 대한 서평자의 평가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책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한다. 때로는 독자가 해당 책을 읽거나 읽지 않기로 결심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책을 이미 읽은 사람들에게 서평은 ‘다시 읽기’, 즉 책의 메시지를 둘러싼 다각적인 성찰이 일어나도록 돕는다. 가령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을 때, 사람마다 그 사건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활발한 토론이 일어나듯이, 주목할 만한 책이 있을 때에도, 독자마다 책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해당 분야에서 활발한 토론이 일어난다. 서평은 이러한 토론의 일부로서, 서평자의 의견을 다른 독자들에게 전달하여 독자들이 해당 책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보도록 한다.
서평의 핵심 요소
서평은 책에 대한 이해와 비평을 위주로 하는 글쓰기이므로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 요약과 이해: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약이 중요하다. 요약의 주요 대상은 글의 핵심주장, 핵심 개념,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와 근거들, 글의 의도, 글의 맥락, 저자의 관점 등을 간추리는 작업이다. 요약은 분석을 위한 디딤돌이다. 무엇보다도 글의 핵심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으면 좋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관점과 근거 및 사례들을 간추린다. 책의 각 장에서 주로 다룬 내용을 정리하면 저자의 주요 접근 방식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분석: 여러 근거들을 바탕으로 책의 특징적인 점들을 찾아낸다. 책 속에서는 줄거리, 목차의 구성, 저자가 제시하는 개념이나 아이디어, 문체, 저자의 논증 방식 등을 관찰하여 책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고, 책 밖에서는 저자의 이력, 저자의 다른 책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 책을 둘러싼 시대적‧역사적 배경 등을 살펴보고 책의 특징을 변별해낼 수 있다.
- 판단: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책의 고유한 특징을 명확하게 정리한다. 예컨대 평소 친구가 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을 관찰하고 기억을 축적하는 것이 분석이라면, ‘돌아보니 이 친구는 특히 약속시간에 절대 늦지 않는 사람이다.’와 같이 분석 결과 두드러지는 점을 명확하게 정리하여 제시하는 것이 판단이다. 책에 대해서도 ‘분석 내용을 종합해 보니 이 책은 반개발 개념을 제시한 점이 특징적이다.’와 같이 두드러지는 점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 평가: 판단 결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책이 어떤 맥락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평가한다. [예문 2]에 등장한 반개발 개념이 녹색 운동과 관련 있었다면, 녹색 운동 분야에서 나온 다른 책이나 다른 개념과 비교했을 때 『오래된 미래』 및 반개발 개념이 지니는 성과와 한계가 각각 무엇인지 쓸 수 있다.
- 대안 제시: 앞선 평가에서 다루었던 책의 한계에 대해 대안적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측면들을 제시할 수 있다. 반개발 개념을 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들여다보고 이 맥락에서 발견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짚어 준 후,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반개발로 개인의 재산권 침해의 문제가 심각한 사례들을 생각해보고 이러한 구체적 현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반개발을 보완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면 상당히 창의적인 서평 쓰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서평의 구성: 사례 구경하기
다음 두 편의 서평 사례를 통해, 서평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자.
– 도입부
– 본론
– 마무리
– 도입부
– 본론
– 마무리
사례 정리: 서평의 기본적인 구성
서평은 크게 ‘도입부, 본론, 마무리’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사례 1, 사례 2를 종합해 보면, 각 부분에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됨을 알 수 있다.
– 도입부
- 책에 대한 서평자의 최종적인 평가가 분명히 드러나는 제목
- 책의 기본정보(저자, 제목, 번역자, 출판사, 출판연도) 명시
- 책과 저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
- 책을 의미 있게 해 주는 맥락 소개
(최근의 사회 현상, 책이 다루는 주제나 책이 속한 분야의 역사적 흐름, 저자의 활동 이력 등, 책의 위치를 가장 잘 짚어 줄 수 있는 배경 제시)
– 본론
- 책의 주제 또는 핵심 메시지 요약
- 책이 지닌 가장 큰 장점과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제시
- 책이 지닌 한계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제시
(단점이 보이지 않는 책이라면 생략 가능) - 책의 한계를 보완하거나 책이 더 발전하기 위해 서평자가 제안하고 싶은 것
– 마무리
- 본론의 내용 요약
- 책에 대한 서평자의 최종적인 평가를 명료하게 제시
- 책이나 책이 속한 분야에 대한 서평자의 제안, 기대 등
서평을 잘 쓰려면
서평 쓰기를 위한 책 읽기 방법
– 두 번 이상 읽기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대상 책의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고 책과 관련된 정보까지 폭넓게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한 번만 읽어서는 서평을 써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서평을 쓸 때는 대상 책을 최소 두 번 이상 끝까지 읽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읽는 목적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책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은, 책을 처음 읽을 때에는 책의 메시지를 최대한 수용하고 책의 특징과 매력을 찾아내려는 호의적인 자세로 읽어 보고, 두 번째로 읽을 때에는 첫 번째 독서에서 남았던 의문점이나 불만을 바탕으로 책의 내용이나 구성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는 것이다.
tip 읽기 부담스러운 책은 ‘머리말, 목차, 해설’부터 살펴보자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핵심 메시지나 그 구성 방식을 스스로 정리해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서 책을 소화하기 어려운 경우, 흔히 책의 첫머리에 수록되는 머리말, 목차, 책의 말미에 수록되는 해제나 해설 등을 먼저 읽어 보면 도움이 된다. 머리말이나 해설은 저자의 의도나 저술 동기, 책이 다루는 주제의 중요성 등을 짚어 주는 경우가 많다. 목차는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 메모하며 읽기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메모를 해야 한다. 책에 수록된 모든 구체적인 내용과 그 위치, 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 및 그 출처를 일일이 기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메모, 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한 메모,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나의 의문이나 단상을 기록한 메모, 책에 관해 추가적으로 조사한 정보를 기록한 메모 등을 작성하여 모아둘 수 있다. 서평에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을 쓸지 정할 때, 이 메모들을 다시 살펴보고 중요한 메모들을 골라 적절한 순서로 배치하면, 서평의 개요를 효율적으로 짤 수 있다.
tip 인용할 만한 부분은 미리 모아두자
서평자는 책의 장점이나 단점을 지적한 후 그것이 특히 잘 드러난 부분을 인용하여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에는 인용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미리 발췌하고 쪽수를 기록하여 모아 두는 것이 좋다. 이 작업을 수시로 해 두면, 글을 본격적으로 작성하는 단계에서 인용할 부분을 다시 찾기 위해 책 속을 이리저리 헤매지 않아도 된다.
– 조사하며 읽기
서평에는 책 속에 쓰인 내용뿐만 아니라, 책을 둘러싼 책 바깥의 맥락들도 함께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맥락들과 책의 관계를 말할 수 있으려면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평 사례 1 「올바른 역사 서술의 필요성」에서 서평자는 ‘최근 공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역사를 해석하려는 흐름이 존재한다’는 점을 언급한 후, 서평 대상 책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출간되었다고 설명하였고, 그래서 서평 대상 책은 조선 시대를 생활 풍습이나 학문을 중심으로 설명해 온 다른 많은 역사해설서들과 구별된다고도 하였다. 이처럼 서평 대상 책이 속하는 영역, 책과 인접하면서도 구별되는 비교 대상들을 함께 언급하면, 서평 대상 책이 세상의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짚을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을 하기 위해, 서평자는 책을 읽은 후 추가적인 조사를 해야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출간된 역사해설서들은 무엇무엇이 있었는지, 그 책들이 대체로 어떠한 경향을 보였는지, 최근에 관련 분야의 동향은 어떠했는지 등을 따로 조사한 후, 그 조사 내용과 서평 대상 책을 비교해 보고, 서평 대상 책이 지니는 특징을 변별했을 것이다. 서평을 쓸 때에는 이러한 조사 및 고민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서평에 쓸 내용 마련하기
– 내용 요약은 필수
서평의 본론에는 반드시 책의 전체적인 내용 요약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① 서평 전체가 내용 요약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서평에서 내용 요약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부분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책에 대한 서평자의 평가이다. 그러므로 서평에서 내용 요약의 비중이 적어도 서평자 의견의 비중보다 높아지지는 않도록 한다.
② 책이 수록된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요약할 필요는 없다. 사실 요약에도 ‘초점’이 필요하다. 무조건 모든 챕터의 내용을 순서대로 고르게 언급하려 하다 보면 오히려 글이 산만하고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책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파악한 후, 그 핵심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 중요한 부분들을 추려 언급함으로써,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초점을 뚜렷하고 일관성 있게 제시하는 것이 좋다.
– 저자의 중심 논지나 메시지에 대한 나의 생각 메모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저자의 논지나 메시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를 수시로 메모해 둔다. 예를 들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에서 반개발 개념이 제시되었다면, 그러한 개념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실제로 문화 다양성 및 생태계 파괴 문제 해결에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 여겨지는지, 비슷한 다른 개념들과 비교되어 보이는 점은 없는지, 개념 속에 허점이 있거나 저자가 침묵하는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tip 저자의 관점에 끌려가지 않기
잘 쓰인 책들은 때로 저자의 말이 전부 옳은 것만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면밀히 살펴보아도 단점이 발견되지 않는 책이라면 서평 또한 단점에 대한 지적 없이 작성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만, 서평자가 ‘평이하고 보편타당한 서술’과 ‘저자의 관점이 녹아 있는 서술’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여 책의 보완점을 포착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관점으로부터 적정한 거리를 두기 위한 간단한 방법으로, 책 속의 서술이 ‘저자의 주장,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는 것임을 명확히 하기가 있다.
연산군은 단종의 비참한 말로가 낳은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한다. 연산군의 횡포는 신하에게 축출되지 않기 위한 표현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연산군은 단종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저자의 판단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바꾼다면 해석이 전혀 바뀔 수 있음을 암시한다. 흔히 우리는 단종을 비운의 임금으로, 연산군을 광증에 휩싸인 폭군으로 기억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연산군의 횡포는 단종처럼 신하에 의해 축출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지른 행위였을 수도 있다. |
위 첫 번째 예문의 서평자는 연산군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서평에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해석은 연산군에 대한 여러 해석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 저자의 해석이 다른 해석들과 일정한 관계나 구도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두 번째 예문은 직접인용을 활용하고 ‘저자’의 존재를 직접 언급하여, 연산군에 대한 책의 서술이 보편타당한 것이라기보다‘저자의 생각’에 해당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또한 사람들이 연산군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는 인상(=‘저자의 생각’이 아닌 것)과 ‘저자의 생각’을 구분하고 둘을 대조하기도 한다.
– 저자의 내용 전개 방식에 대한 나의 생각 메모
서평자는 책의 내용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그 내용을 저자가 ‘어떻게’ 제시하였는가에 대해서도 평가할 수 있다. 저자가 목차 순서를 어떻게 정했는지, 주로 어떤 과정으로 논증을 해 나갔는지, 자료를 제시하는 방식이나 문체에서 특징적인 점은 없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내용 전개 방식 상의 특징을 파악한 후에는, 그러한 방식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평가해 본다. 효과적이라고 평가하든 그렇지 않다고 평가하든, 왜 그렇게 생각했으며, 책의 어느 대목에서 그것을 잘 확인할 수 있는지 꼼꼼히 메모해 둔다.
이것만은 꼭! 단점을 지적하는 것만이 ‘비평’은 아니다
흔히 ‘비평’이나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말을, 대상의 단점을 찾아내어 공격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비평은 대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의 장점이 보이면 장점을, 단점이 보이면 단점을, 평자가 분석한 그대로 쓰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서평은 ‘책을 대상으로 한 비평’으로서, 서평자 또한 책의 장점과 단점을 포착한 만큼 그대로 쓰는 것이 좋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장점과 단점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기보다는, ‘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을 찾아 소개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 정확하게 말한다’는 근본적인 목적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 다른 책들, 시대적 맥락, 역사적 배경과 비교되는 점 메모
서평을 위한 책 읽기는 반드시 책과 관련된 추가적인 정보 조사와 병행되어야 한다. 저자의 생애와 활동 이력, 저자의 다른 책들, 서평 대상 책과 같은 분야에서 나온 다른 책들, 서평 대상 책이 다루는 주제의 역사적 배경 및 시대적 흐름, 서평 대상 책과 관련된 사회 현상 등을 조사해 볼 수 있다. 이때 조사한 내용에 비추어 서평 대상 책에서 어떤 특징이 발견될 경우 메모해 두도록 한다. 가령‘저자가 이전에 펴낸 책들이 대체로 ~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이 책도 비슷한 주제를 이어서 다루고 있다’거나, ‘해당 분야에서 ~한 주장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 책은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와 같이, 조사한 내용과 서평 대상 책을 비교해 보고, 비교 속에서 드러나는 책의 특징을 메모해 둔다.
– 메모들을 바탕으로 하나의 주제 도출하기
책 내용의 요약, 책 내용에 대한 나의 생각 메모, 내용 전개 방식에 대한 나의 생각 메모, 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조사한 메모를 마친 후에는, 메모들을 전체적으로 다시 검토해 보면서 서평의 주제를 정한다. ‘책의 가장 주된 특징과 그에 대한 나의 평가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곧 서평의 주제가 된다.
주제를 정한 후에는, 이와 관련된 메모들과 인용할 부분들을 선별하여 적절한 순서로 배치하면서 글의 개요를 짠다. 이때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를 일관성 있게 다루도록, 주제와 무관한 내용이 이것저것 등장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이것만은 꼭! 주제가 드러나는 제목 정하기
서평의 제목은 책에 대한 서평자의 최종적인 평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정해져야 한다. 서평의 주제를 정한 후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가제를 우선 정해 보고, 글 작성을 마친 후 제목이 여전히 적절한지를 다시 한 번 검토한다.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실제 글의 내용이 처음의 계획과 조금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 우리시대의 교양』을 읽고 『뻬드로 빠라모』로 멕시코를 읽다 |
다음과 같은 제목들은 읽은 책의 제목을 알려줄 뿐, 그 책의 특징이 무엇이며 서평자가 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다음과 같은 제목들은 책이 대강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서평자가 어떤 부분에 주목했는지를 빠르게 전달한다. 부제에는 두 번째 사례처럼 책의 서지정보를 적는 경우가 많다.
병든 세계의 치유를 꿈꾸는 세계시민의 입문서, 『권력의 병리학: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과학적 상상력의 도덕적 회귀 (민문홍, 『에밀 뒤르케임의 사회학』, 아카넷, 2001) |
초보 서평자가 자주 하는 실수에 주의하자
– 반드시 책의 서지정보를 정확하게 밝힐 것
서평의 서두에는 반드시 책의 서지정보(저자 이름, 책 제목, 편집자 이름, 출판사, 출판 연도, 개정이나 수정 여부, 번역서인 경우 책의 원제와 번역자 이름 등)가 정확하게 기재되어야 한다. 동일한 저자, 동일한 제목의 책도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왔던 책의 오류를 정정한 개정판이 나올 수도 있고, 편집자나 출판사가 바뀌면서 편집체계를 바꾼 버전이 나올 수도 있고, 번역서의 경우 번역자가 바뀌면서 문장 표현을 바꾼 버전이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서평자가 어느 버전의 책을 읽었는지 특정하기 위해, 읽은 책의 서지정보를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책의 서지정보는 대개 부제나 글의 도입부에서 밝히는 경우가 많다.
– 책을 읽게 된 계기, 책을 읽은 후의 반성 등 개인적인 소회를 쓰지 말 것
서평 쓰기에 익숙지 않은 학생들은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한 점을 잘 몰랐는데,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식으로 서평에서 자신의 변화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수업에서 교수님이 읽으라고 하셔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 식으로 책을 읽게 된 개인적인 경위를 쓰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서평은 개인적인 소회나 경위를 밝히는 글이 아니라, 서평을 읽는 독자들에게 책의 특징과 가치를 논리적으로 소개하는 글임을 기억해야 한다. 서평의 중심은 ‘나의 변화, 나의 생활’이 아니라 ‘책’에 있어야 한다.
– 저자의 말, 참고자료의 말, 내 말을 명확히 구분하여 쓸 것
책의 저자가 쓴 내용과, 책과 관련된 다른 자료에서 본 내용과, 서평자 본인의 생각을 구분하지 않은 채로 두루뭉술하게 서평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서평자 스스로도 본인의 생각을 발전시키기 어려워지고, 표절의 위험도 커지기 때문에, 서평에 쓰는 내용은 각각의 출처를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제시하는 것이 좋다. 서평 대상 책에서 본 내용은 ‘저자는 ~라고 말한다/주장한다/생각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다’와 같은 문장으로 쓴다든지, 참고자료에서 확인한 내용은 ‘(참고자료의 저자)○○○는 ~라고 말한다/주장한다/생각한다’, ‘○○○에 따르면 ~라고 한다’와 같은 문장으로 씀으로써, 내용을 제시한 주체를 문장 속에서 정확히 구분하도록 한다. 필요한 경우 인용 양식을 통해 정보의 출처 정보 또한 정확히 밝혀야 한다.
tip 대상 책이나 참고자료가 훌륭해서 쓸 말이 없다고 느껴질 때
한 권의 책이나 유용한 참고자료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이미 그 분야의 전문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보 서평자는 간혹 책이나 참고자료에 압도되어 비전문가인 자신은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직접 만들 줄 모르는 사람도 영화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듯이, 책을 직접 쓸 만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책을 보고 든 생각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독서와 조사를 성실하게 했다면, 전문가의 말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책에 대해 한 생각, 궁금한 점, 의문이 드는 점 등을 솔직하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마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책이나 참고자료를 볼 때 ‘내가 여기에 쓰인 모든 내용에 100% 동의할 수 있는가’를 질문해 보고, 조금이라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참고문헌>
김민영‧황선애, 서평 글쓰기 특강: 생각 정리의 기술, 북바이북,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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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대학글쓰기1 교재편찬위원회 편, 대학 글쓰기 1,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이원석, 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 유유, 2016.
정주아, 서평 쓰기, 서울대학교 교수학습센터 글쓰기교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