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딴 짓 잔치?
아무래도 재인은 딴 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유튜브 알고리즘님의 인도를 따르는 얌전한 양이 되어 갑자기 온갖 세상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감이 코앞인데, 결국 글을 ‘안’ 쓰고 있다니! 그러나 재인을 글을 안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주제도 생각해 놓았고, 대략 개요도 짜놓았는데, 시작을 할 수가 없다는 호소다. 겉으로 보기는 딴 짓을 하고 있지만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다는 고백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 현상은 누구나 심심치 않게 겪는 일이다. 심지어 워즈워드, 쿨리지 같은 근대 문학의 대가들도 글 막힘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뛰어난 작가도 물 밑 갈퀴질에 바쁜 백조나 다름없는 셈이다. 특별히 ‘글쓰기 역량이 충분한데도 글을 쓰지 못하는 현상’을 ‘작가의 벽(Writers block)’이라 부르며 정신분석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을 정도다 (Leader 1991 Writer’s Block). 그러니 대학에서 글쓰기를 배우는 중인 우리는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머리를 쥐어뜯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글 막힘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글 불안증, 글 미루기, 글 멈춤, 드디어는 글쓰기 포기까지.(오현진 2019 쓰기 어려움을 나타내는 용어들에 대한 고찰) 이런 현상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인 해법도 절실하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고민도 다양한 현상이나 원인으로 나뉘어 나타난다. 한 가지씩 해법을 찾아본다.
2. 무엇에 대해 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주제(글감)를 더 작게
“기말 보고서나 중간 과제물로 설득하는 글(에세이)을 써야 하는데 글감을 찾지 못했어요.”
강의 과제는 대개 “무엇무엇에 대해 쓰라.”고 주어지기 때문에 딱히 주제를 찾지 못하는 경우는 적다. 그런데 이렇게 주제가 주어졌을 때에도 글감을 찾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아직 그 주제가 ‘지금 여기서’ ‘내가 쓰는 주제’로 확정되기에는 여전히 추상적인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재인이 적어놓은 글쓰기 계획서(개요)를 보니 이렇다.
주제: “온라인 수업의 장점과 문제점에 대하여”
얼핏 보면 주제가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 막연하다. 이 주제를 하위 논점으로 다시 나눠 보았다.
주제1: “강연형 수업과 토론/참여형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될 때의 차이점”
주제2: “온라인 수업에서 학생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은 현상에 대하여“
주제3: “온라인 수업에서 비디오를 켜놓은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는지에 대하여”
주제4: “동영상 시청 방식 수업에서 교수 학생 사이의 소통을 높이는 방안에 대하여”
이밖에도 얼마든지 논점을 뽑아낼 수 있다. 그중 자신이 가장 관심이 가거나 준비가 되어 있거나 독자에게 가장 ‘뜨거운’ 주제를 선택해 본다.
하위 주제를 많이 떠올릴수록 문제를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사고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또 이렇게 주제를 작게 혹은 구체적으로 설정할수록 다루는 사실이나 근거는 더욱 명확해지고, 그 작은 사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사고하게 되므로 글의 깊이가 더해질 수 있다. “주제는 작게, 성찰은 깊이”, “작을수록 강하고 깊어진다.”는 명제를 잊지 말자.
재인은 이중에서 세 번째 ‘소통 높이기’를 주제로 선택했다. 한결 낫다.
3. 왜 쓰는가? 글의 목적이 곧 글쓰기의 에너지원
멋진 글이 곧 나올 줄 알았는데, 재인의 글쓰기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 같다. 글의 종류도 명확하고 글의 주제도 제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정해놓기는 했는데 좀처럼 글을 쓰고 싶지 않게 느껴진다면 원인은 더 근본에서 찾아야겠다. ‘왜 쓰는가’를 다시 짚어보아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가? 재인이 적어놓은 개요는 이렇다.
주제: 온라인 수업에서 물론 학생과 학생 사이의 소통이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목적: 온라인 수업에서는 교수와 학생 사이는 물론 학생과 학생 사이의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주장한다’가 목적인가? 다른 학생들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주장한다, 반박한다, 호소한다, 설명한다’ 등등.
목적이라 한다면 그것이 잘 구현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장한다, 반박한다’ 등의 목적이 실현되었는지 어떻게 판단할까? 그냥 주장하고, 반박하고, 호소했으니 목적은 달성된 셈인가? 어딘가 이상하다. ‘주장한다’는 것은 글의 주제이나 주장을 담은 문장이지 글의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적이란, 설명, 주장, 보고, 증명, 묘사, 이야기함으로써 “독자 혹은 현실세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려는 의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글(쓰기)의 목적’이라면 적어도 이렇게 표현되어야 한다. ‘무엇무엇이라 주장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논거를 제시한다.’, ‘무엇무엇을 근거로 반박함으로써 기존의 통념이 실제 현실을 왜곡할 위험성이 있음을 깨닫게 할 새로운(강한, 또 다른 시각의) 계기, 동기, 자극 등을 제공한다.’ 등등.
그러니 재인이 글을 쓰려는 목적은 예를 들면 아래 여러 가지 중 하나이겠다.
목적1: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 할 이유를 교육의 진정한 목적에서 찾아 제시함으로써, 온라인 수업을 단순한 ‘시청각 수업’으로 여기는 태도가 단순한 통념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목적2: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 할 이유를 교육의 진정한 목적에서 찾아 제시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서로 배우는 과정’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
목적3: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할 이유를 교육의 진정한 목적에서 찾음으로써 학교 당국이 온라인 수업에 대한 여러 측면의 지원을 강화해야 할 이유를 학생, 학교 관계자에게 제시한다.
목적4: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할 이유를 교육의 진정한 목적에서 찾아 제시함으로써, 발표자들이 동료 학생의 시선과 입장을 더 고려해주도록 자극한다.
목적5: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이 잘 되지 않는 현실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그동안 당위적으로만 지적되어 오던 문제해결에 즉시 착수할 수 있도록 자극한다.
재인은 이중 두 번째를 목적으로 정해 보았다. 한결 의욕이 생긴다고 한다. 독자도 어서 읽고 싶다. 목적은 동기부여를 낳으며, 동기부여는 글쓰기 활동을 즐겁게 불태우는 원료가 된다. 사랑에 빠졌는데 연애편지(설사 연애문자라도)를 쓰기 귀찮다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4. 누구에게? 살아있는 독자를 떠올리자
글의 주제나 목적을 수월하게 설정하게 하는 또 다른 접근법이 있다. 독자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일이다. 어떤 영화평론가는 연애편지를 쓴다는 마음으로 평론을 쓴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 때 독자는 물론 그 감독이 될 듯하다. 쓴 소리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일이니 애정이 담긴 진정한 평론 글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강의과제물은 연애편지가 아니잖아요.” 재인의 반문이다.
물론 그렇긴 하다. 모든 글을 연애편지로 쓴다면 즐겁기는 해도 은근히 고역이겠으니, ‘편지’라고 일반화해보자. 편지의 특징은 어떤 목적의 편지글이든 특정한 사람을 상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글쓰기도 편지나 마찬가지이며, 특히 이메일과 비슷한 면이 많다. 이메일은 수신 대상자가 직접 수신자는 물론 참조 수신사까지 설정되어 있다. 강의과제물을 대상으로 풀어본다면 직접 수신자는 필자(재인)가 생각한 구체적인 독자일 것이고, 참조 수신자는 바로 과제를 부여한 교수가 된다.
강의과제물의 독자가 교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권하고 싶지 않다. 글의 실천적 목적이 분명해야 할 텐데, ‘학점 잘 받기’가 글쓰기의 목적이라면 과연 연애편지처럼 쓰고 싶을까? 아마 제일 나중에 마감 직전에 쓰게 될 것이다.
진짜 대상을 설정하자. 교수는 그냥 참조자
강의과제물의 채점은 물론 담당교수가 직접 하겠지만, 과제물은 학생이 성인으로서 자신의 앎을 넓히면서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훈련의 의미로 제시하는 것이다. 과제물에도 자신만의 실천적 의미를 분명히 부여하여 쓰는 편이 좋다. 특히 서평, 논평, 에세이, 논문처럼 현실의 시민이나 연구자들을 독자대상으로 상정하여 쓰는 글이라면 더욱 그렇다. 당장은 그 강의 안에서 끝나는 글쓰기인 것 같지만, 결국은 20대의 열정을 발휘하여 완성해 놓는 자신만의 작품 목록 즉 포트폴리오가 되는 것이다. 언젠가 이 글이 빛을 볼 수도 있을 뿐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이 글을 바탕으로 정말로 실천적인 글쓰기를 단숨에 해낼 수 있는 법이다.
이제 담당 교수는 ‘참조’로 설정하고, 진짜 수신자를 설정한다. 진짜 수신자는 자신이 쓰려는 글의 목적, 주제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가령 재인이 지금 쓰려는 독자는 다음과 한 사람이 아닐까.(재인이 정한 글쓰기의 목적을 염두에 두자. (목적: ‘온라인 수업에서 소통을 더욱 강화해야 할 이유를 교육의 진정한 목적에서 찾아 제시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서로 배우는 과정’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
가상 독자1: 동료가 쓴 서툰 글을 무시하고 별로 공들여 읽지 않는 친구 유진.
가상 독자2: 교수의 말이나 교재 내용만 신경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던 후배 희수.
가상 독자3: 성적에 반영되는 동료 평가만 골라서 열심히 하고 있는 친구 유선.
재인은 이중에서 첫 번째 ‘유진’을 가상의 독자로 설정했다. 사실은 어떤 친구가 익명으로 올린 서툰 글을 보고 피식 웃어버리고 말던 유진이의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꼈었다. 재인은 그 익명 글이 서툴긴 해도 뭔가 날카로운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눈여겨보던 차였으며, 지금 글의 주제도 이 과정에서 정해진 것이었다.
이렇게 독자 대상을 구체적으로 정해보니 글에서 화제로 삼을 소재(제재)도 손에 잡혔으니 시작이 곧 눈에 보이는 듯하다.
5. 독촉이 없어서 안 쓴다구요? 편집자(관리자)가 울고 있어요
그래도 재인은 여전히 꿈쩍 않고 있다. “뭐, 마감도 좀 남았고, 독촉 연락도 없고…” 강의 리포트라면 마감이 가까울수록 긴장이 높아지겠지만, 학교 신문이나 동아리 회보 원고일 경우 재인은 이렇게 느긋한 모습을 보이기 일쑤인대…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재인의 원고는 어떻게 실릴까? 저 혼자 올리고 마는 SNS 글이라면 전송 즉시 실리지만, 인터넷저널, 잡지, 신문 같은 공식적이거나 공개적인 매체라면 누군가 이를 받아서 최소한이라도 편집이나 교열을 한 후에 올리게 된다. 즉 이 글을 읽을 독자와 필자 사이에서 수고를 마다 않는 편집자 혹은 저널 관리자가 있다. 처음 원고 청탁을 한 그 사람, 원고를 받아 다음 작업을 해 줄 그 분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이며, 재인이 원고를 전달하기를 목 빼고 기다리고 있다.
재인이 오후 늦게 원고를 보냈다면 편집자나 관리자에게는 야근을 하라는 말일 수도 있으며, 급한 원고는 밤을 새우라는 일보따리일 수도 있다. 매체의 담당자가 제일 첫째 독자이자 재인의 원고를 살아 있는 작품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니, 그 담당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면 마감시간 직전을 악착같이 맞출 생각은 사라지지 않을까.
6. 공간은 힘이 세다. 방해물 제거하기도 능력
열정이 샘솟는 강력한 동기 부여하기, 살아 있는 구체적인 독자나 편집자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쓰기, 이렇게 확 달라졌다면 글쓰기가 즐겁거나 설레는 활동이 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유튜브, SNS, OTT 등 우리를 유혹하는 딴 짓의 개미지옥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어쩌면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탓이 아닐지 모른다.
재인을 야금야금 물어뜯음으로써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이 개미귀신들을 벗어나기 위한 효적인 방법,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 있긴 하다.
재인에게 물어본다. “어디에서 쓰고 있나요?”
“물론 책상이죠.” 이렇게 답을 해준다. 다시 묻는다.
“그 책상에서 평소에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뭐, 게임도 하고요, 아이패드 올려놓고 영화도 보고요, 인터넷 서핑, 쇼핑도 하지요. 아 가끔 음악도 듣습니다.”
역시. 그렇다. 재인의 공부방 혹은 책상은 유흥과 오락과 놀이에 최적화된 장소로 꾸며놓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쓸 수 있긴 하겠는가.
결국 집필만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문화생활 전용의 장소가 아닌 곳, 가령 집안의 거실이든, 널찍한 카페든 집필 전용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그 공간도 ‘타인의 시선’ 혹은 자신의 시선(이를 메타인지라 한다)에 노출되는 곳이라면 글쓰기에 최적이다. 즉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주변에 잘 보이는 장소를 선택하고 노트북 워드프로세서 화면도 주변 사람들에게 노출된 방향으로 장비를 배치해 놓자.
7. 일단 15분만 눈 딱 감고 써보자: 발 담그기의 강력한 효과
써야지 써야지, 쓸까 말까 이런 망설임과 초조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마지막 필살기가 있다. 일단 15분 혹은 딱 반 페이지만 끼적거려 보는 것이다. 단어든 문장이든 워드프로세서나 원고지에 내려 써보는 것이다. “생각을 다 정리한 후에 쓴다.”가 아니라 “쓰면서 생각한다.”가 되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단어가 단어를, 문장이 문장을 밀어내면서 글쓰기가 술술 이뤄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발 담그기’의 효과다. 발 담그기에는 ‘딱 15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참고문헌 먼저 정리해 두기, 목차 먼저 만들어보기, 글쓰기에 필요한 책이나 언론 기사를 잘 추려서(가능하면 출력해서) 글쓰기 작업 공간에 정리해 놓기 등등, 어떤 것이든 ‘글 쓰는 행위’ 안에 풍덩 빠지는 행위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이미 글을 쓰고 있게 된다.
8. 메시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면?
의욕도 준비도 환경 정리도 완벽하지만 머릿속 생각을 글로 만들어내기가 정말 힘들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글쓰기 자체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수 있다. 짧은 문자나 친구 사이에 주고받는 글 밖에는 써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정말로 연습이 필요하다. 호나우두, 메시, 호날두 같은 위대한 축구선수들의 공통점은 매일 엄청난 시간을 꾸준히 연습했고 오늘도 내일도 또 하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하루 종일 영화 보고 게임하고 유흥을 즐기는 천재선수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연습이 대가를 만드는 법이다.
어떻게 연습하란 말인가? 간단하다. 우선 ‘한 가지 종류의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이다. 보고서면 보고서, 요약이면 요약, 독후감이면 독후감 등등 특정한 종류의 글을 집중적으로 계속하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글에 능통한 사람은 없다. 이름난 작가, 문필가, 집필전문가들을 잘 살펴보자. 그들은 대부분 특정한 종류(장르, 유형)의 글을 쓰는 데 대가였을 뿐 무슨 글이든 누에고치처럼 술술 뱉어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글쓰기의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딛은 사람일수록 한두 가지 종류의 글을 집중해서 쓰기를 권한다. 가령 이렇게 한 학기 동안 집중적으로 쓸 글의 종류를 정해둔다.
이번 학기에는 서평 쓰기에 집중한다
이번 학기에는 보고서 쓰기에 집중한다
물론 한 학기 다섯 과목 모두 서평이나 보고서처럼 자신이 원하는 종류만 과제로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에너지를 특정한 종류의 글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가령 글쓰기센터의 특강이나 일대일 맞춤 지도를 듣기, 다양한 잡지나 책에서 잘 쓴 글을 읽어보기 등등, 과제 작성에 필요한 노력 이외의 에너지를 서평이면 서평, 보고서면 보고서를 쓰는 데 더 기울이는 것이다.
9. 다시, 문제의 근본은 ‘글의 목적’. 글이 천 냥이면 글의 목적이 구백 냥
글쓰기 방법을 담은 이러저런 책, 논문, 작가들의 글쓰기 노트 등을 보면 글 막힘을 해결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심리치료나 학습치료 받아보기부터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책상에 앉아 있기, 딱 하루 한 문장 쓰기 등 작은 목표 설정하기, 심지어 걸레질이나 책상 정리 등등. 그러나 해법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해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 아닐까.
자질구레한 ‘팁’을 찾기 이전에, 치료실 문턱을 두드리기 전에 가장 중요한 문제의 근본으로 돌아와 보자.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글을 쓰게 되는 그 힘은 ‘동기부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 내 입을 열어 나의 메시지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글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잘 쓸’ 필요는 없다. 적어도 한 명의 독자만 내 글을 애정으로 읽어준다면 그보다 즐거운 일은 없지 않을까? 글쓰기 역량이나 실력은 천천히 쌓아나가면 된다.
차익종
서울대학교에서 국어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관계수업』,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블랙스완』, 『최후의 교수들』, 『알리 아메리카를 쏘다』, 『불평등과 싸우는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등 여러 권을 우리말로 옮겼고, 『칼럼 쓰기: 마음을 사로잡는 설득에세이』(근간)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