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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궁금했으면 하는, 번역 세상 이야기] 1. 번역과 글쓰기는 어떻게 연결될까 – 이상원

[당신이 궁금했으면 하는, 번역 세상 이야기] 1. 번역과 글쓰기는 어떻게 연결될까 – 이상원

번역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번역이 어떤 일인지, 내 삶에 얼마나 가까이 존재하는지…… 아마 없을 것 같다. 늘 들이마시는 공기에 대해 굳이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번역은 공기처럼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책이나 영화, 다큐멘터리 방송 등이 번역을 거친다. 뉴스도 많은 부분 번역된 것이다. 매일 접하는 광고, 물건의 사용 설명서도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번역은 글을 매개로 한 의사소통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번역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대학생에게 가장 익숙한 글쓰기는 아마 수업 과제일 것이다. 자료를 조사해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글이 대부분이다. 자료가 외국어, 가장 흔하게는 영어로 되어 있는 경우라면 과제에 번역이 개입되었을지 모른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한국어 과제에 집어 넣는 것, 핵심 문장을 한국어로 바꿔 직접 인용하는 것이 모두 번역이니까. 물론 여기서 번역이 전체 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 크지 않을 테고 그리하여 번역을 하고 있다는 의식도 희미할 것이다.

 

반면 번역을 하는 사람은 늘 글쓰기에 대해 생각한다. 번역이 이미 쓰인 글(원문)을 새로운 글로 바꿔 쓰는 작업이어서 그렇다. 번역 과정에서는 원문 글을 뜯어읽으면서 글쓴이가 왜 이 단어, 이 표현, 이 문장을 쓴 걸까 고민하고, 어떤 방법으로 <글쓴이 – 원문 독자>의 관계를 <글쓴이 – 번역가 – 번역문 독자>의 관계로 설정해야 효과적인 번역 글이 새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인지 궁리를 거듭한다.

 

그렇다면 번역은 글쓰기의 일종일까? 둘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사실 개인적인 필요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는 지금 글쓰기 교과를 담당하는 강의교수로 일하지만 글쓰기 교육을 전공하지 않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전공은 통번역학이고 오랫동안 출판 번역, 내 경우에는 외국어 도서를 한국어로 번역 출간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다 우연히 글쓰기 교과 담당자 채용에 지원했다가 덜컥 채용이 되었다. 나중에 들으니 심사위원들은 번역을 많이 해온 내 이력을 좋게 평가했다고 했다. 여러 글을 많이 읽고 번역하면서 많이 썼으니 글쓰기 선생이 될 만하다고 본 것이다.

 

글쓰기 교과 담당자는 국문학이나 국어학을 전공한 경우, 그리고 철학을 전공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쓰기 강좌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내가 당연히 국문과 출신이려니 짐작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꽤 이질적인 존재인 셈이다. 여기서 나 스스로 정리를 해봐야 할 필요가 생겼다. 글쓰기보다는 번역 쪽에 주로 몸담았던 내게 글쓰기 선생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번역은 글쓰기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일단 글쓰기와 번역의 작업 과정부터 비교해 보면 1차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글쓰기의 과정은 다양하게 나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계획하기 – 내용 구성하기 – 글로 표현하기 – 고쳐 쓰기>라고 단순화해 보자. 계획하기 단계에서는 어떤 목적으로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어떤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쓸지 결정한다. 내용 구성하기 단계는 글에 들어갈 내용을 찾고 정리하고 조직화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실제 글을 쓰는 단계, 그리고 고쳐 쓰는 단계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번역의 과정은 어떨까? <계획하기 – 원문 분석 및 이해하기 – 번역문으로 표현하기 – 고쳐 쓰기> 정도일 것이다. 계획하기, 표현하기, 고쳐 쓰기의 세 단계에서 하는 활동은 글쓰기 과정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내용 구성 대신 원문 분석 및 이해가 들어간다는 데 있다. 또한 ‘원문’이라는 존재가 개입되면서 번역은 두 개 이상의 언어가 작용하는 공간이 된다.

 

‘내용을 스스로 구성하지 않는다니 그건 제대로 된 글쓰기가 아니군!’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그렇다. 글쓰기는 창조고 번역은 모방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하게 무 자르듯 나누기는 어렵다. 장편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다고 해 보자. 내용을 대폭 압축하고 극적 요소를 부각시키는 과정을 거쳐 대화 중심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소설과 뮤지컬이 모두 같은 한국어라고 할 때 이러한 대본 작업은 글쓰기라고 부를 수 있는가? 글쓰기의 하위 요소인 각색 글쓰기 정도로 잡아야 할까? 만약 소설과 뮤지컬의 언어가 다르다면 그때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각색이 되었다 해도 번역인가, 번역과는 좀 다른 번역 각색이라는 유형인가. 이는 창조인가, 모방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글쓰기에서 내용 구성은 온전히 글쓴이의 머릿속에서만 나오는 걸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글쓴이가 말문이 트이고 글자를 익힌 시점부터 접해온 수많은 글들, 사람들에게 들은 말과 나누었던 대화, 살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 등등이 모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던 이런 자료가 글을 구상하면서 필요할 때 활용된다. 창조의 대표 격이라 여겨지는 문학 창작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새로운 인물과 사건, 세계를 만들어내고 독자를 울고 웃기는 작품을 내놓는 작가는 무(無)에서 유를 이룬다기보다는 자신이 접한 문학 작품, 개인적 경험, 보고 들은 얘기 등등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번역을 하는 사람이 원문을 이해할 때나 번역문을 만들어낼 때도 그동안 원문 언어와 번역문 언어로 읽었던 다양한 글들, 두 언어권 문화에서 경험했던 일들, 원문에서 다뤄지는 영역에 대한 지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동일한 내용의 원문이라 해도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번역문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렇게 보면 글쓰기 과정의 ‘내용 구성하기’와 번역 과정의 ‘원문 분석 및 이해하기’가 꽤 닮아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번역과 글쓰기가 긴밀히 연결되었다는 주장도 가능해진다.

 

글쓰기와 번역의 연결 관계는 단련의 방법이 결국 동일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글쓰기든 번역이든 잘 해내려면 일단 많이 읽어야 한다. 읽으면서 글이 구성되는 다양한 방식을 접하고 분석하는 연습을 해야 자신의 글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또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이 써봐야 한다. 이런저런 주제와 형식의 쓰기를 경험하면서 문제를 해결해가야 글쓰기로든 번역으로든 더 좋은 소통을 이룰 수 있다.

 

글쓰기를 잘 하는 사람이 모두 번역을 잘 해내는 것은 아니다. 외국어라는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번역을 잘 하려면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글쓰기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다면 ‘번역 = 글쓰기 + α’라는 거친 공식화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상의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통번역학을 전공하고 번역 작업을 계속하는 내가 글쓰기 교과 담당자이기도 한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리고 글쓰기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자기 글을 여러 편 쓰는 것 외에도 서로의 글을 읽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글을 접하고 분석하도록 독려한다. 수업에 참여하는 나 또한 학생들의 글을 열심히 읽으면서 스스로 더 좋은 글을 쓰고 더 좋은 번역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단련해가고 있다.

삽화: 김아영 (영어영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