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란?
설명이란 어떤 대상이 지니는 의미, 작동의 원리, 발생의 이유 등을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가전 제품 사용 방법, 장학금 신청 절차 등 실용적인 정보에서부터 추상적인 개념, 특정 현상이 발생하는 원리 등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까지 설명은 일상 생활과 전문 학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설명’은 설명문에서만?
흔히 글쓰기에서 ‘설명’이라고 하면 설명문, 보고서 등의 글에서만 사용되는 기술 방식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학술적 글쓰기의 전개 과정에서 설명의 방식이 필요한 글은 설명문, 보고서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이 참임을 입증하는 논증문에서도 글의 살이 되는 많은 부분은 설명의 방법을 함께 활용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설명문이나 실험 보고서처럼 글 전체가 특정 대상에 대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설명은 핵심적인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차원에서 필요하다. 주제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최신 연구 동향을 설명하는 것이나, 논의를 전개하는 데 필요한 핵심 개념어의 의미를 풀어주고, 사건의 경위, 일련의 절차나 과정을 기술하는 것처럼 독자와 효율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과정에서 설명의 방식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독자를 고려하여 글 쓰기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글을 전개하는 방식은 주제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며, 주제는 글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설명하는 글도 예상 독자에 따라 글의 목적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필자의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예상 독자의 관심도 및 대상에 대한 이해 수준 등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구 온난화’에 대해 논의하고자 할 때, 독자가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거나, 지구 온난화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에 서 있다면 “어떻게 하면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의 연구 질문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글의 궁극적 목적이 단지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이러한 방안을 실천하도록 이끌어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상 독자들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문제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먼저 “지구 온난화란 무엇인가”, “지구 온난화가 왜 문제인가” 등의 연구 질문을 중심으로 글을 구성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처럼 무엇보다 글을 쓰기 전에는 자신이 쓸 글을 읽을 예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목적을 분명하게 확정한 후 집필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독자의 관심을 끌 것인가?
사실 전형적인 설명문의 일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제품 사용 설명서조차도 단지 독자가 제품 사용 방법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품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이 사실을 간과하기 쉬운 것은 이 경우에는 독자에게 이미 글을 읽을 동기(필요)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설명서가 불충분하게 작성된 경우에도 독자(소비자)는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스스로 오류를 바로잡아 가며 열심히 읽는다.
하지만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 특정한 문제의식을 갖도록 할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경우, 또는 모든 사람이 호기심을 갖고 있으리라고 단정할 수 없는 특정 현상이 발생하는 과학적 원리에 대해 독자가 이해하도록 할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경우에는 어떨까? 이 경우에는 독자가 글을 읽을 동기를 필자가 끌어내주어야 한다.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떤 점에서 중요한 것인지 대상이 지니는 가치를 먼저 독자에게 충분히 이해시키는 과정이 본론을 기술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한다. 새로 구입한 물건을 사용하려는 필요와 목적을 갖고 있을 때, 소비자가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것처럼, 독자가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유용한지’ 그 필요를 인식할 때, 적극적으로 ‘나’의 글을 읽는 능동적 독자가 될 수 있다.
흔히 설명문을 이해와 설명을 위한 글, 논설문을 주장과 설득을 위한 글로 구분하지만, 사실 글의 목적이 설명을 위한 것과 설득을 위한 것으로 명확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지구 온난화’에 대해 글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보통 ‘지구 온난화’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 글은 일반적으로 아직 이 원리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를 잘 이해시키기 위해 ‘설명’의 목적을 갖고 기술된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가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어떨까? 실제로 ‘지구 온난화 회의론자’라고 불리는 일군의 집단이 있다. 이들에게 지구 온난화가 현재에도 진행 중인 사실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처럼 특정 대상에 대한 이해 방식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충돌할 경우, 외견상 설명문처럼 보이는 글이라도 글의 궁극적 목적은 ‘설득’이 될 것이다. 물론, 이때 ‘지구 온난화’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 수준과 글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초보자들에게 ‘온실 효과’를 설명하는 차원에서 구성된 내용과 다를 수밖에 없다.
‘지구 온난화’ 문제처럼 정치적인 목적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순수학문의 영역에서 특정 현상의 발생 원리나 구조에 대한 해석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진리로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라면 논문의 주제가 되기 어렵기 때문에 관점이 완전히 일치하는 연구 대상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이제까지 제시되었던 답변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답변을 제시하고, 이것이 참임을 입증하기 위한 설명이 논증으로 귀결되는 구조를 취하게 된다.
설명의 주요 도구
대상의 특성 및 글의 목적에 따라 분류, 정의, 비교, 서사, 묘사 등 글쓰기의 다양한 방법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분류와 비교는 독자가 큰 체계 속에서 다른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대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정의는 개념을 확인하며 대상의 특성을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한다. 서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상(사건)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성이 명확히 드러나도록 한다. 묘사는 대상의 인상을 독자가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각각의 방법이 지닌 특성들을 잘 이해한다면 특정한 대상을 설명할 때 어떤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판단하여 효과적인 글쓰기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분류
분류는 여러 대상이나 개념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하위 부류로 나누거나 상위 부류로 묶어 나가는 글쓰기 방법이다. 분류의 방식도 글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활용 가능하다.
– 전체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질서를 확인하기 용이하다.
전체 집합을 공통점을 지닌 여러 그룹으로 묶어 분류하면 전체 체계도가 그려지기 전에는 무질서하거나 복잡하게 보이던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질서를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연구 분야나 아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대상에 대해 설명할 때 효과적이다.
– 전체 체계 속에서 하나의 대상이 다른 대상과 맺는 관계를 파악하기 용이하다.분류는 기준을 단계적으로 적용해서 대상을 다층적으로 나누는 것이므로 대상 간의 관계를 위계적으로 파악하기에 좋다.
– 전체 체계 속에서 하나의 대상이 차지하는 위상 및 의미를 파악하기 용이하다.
나무의 특성을 잘 이해하려면,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의 대상을 전체 체계 속에서 이해할 때, 그 전체 체계 속에서 드러나는 대상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 전체 체계가 변화하는 시기,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추적하기에 용이하다.
하나의 체계(도)가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고정불변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 따라 분류 기준이 바뀌기도 하고, 예전에는 존재하던 대상이 이제는 사라지거나, 또는 존재하지 않던 대상이 새로 생겨나면서 전체 체계가 변화하기도 한다. 전체 체계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이러한 변화 지점을 빨리 포착할 수 있다.
[예시]
연구비를 향한 고군분투
연구실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크게 각 연구실의 교수가 주도하는 고유 연구와 국가와 기업 등으로부터 수주해온 연구 과제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대학원과 연구실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주요 관심사는 해당 연구실의 고유 연구지만, 실제 연구실에선 고유 연구 외에도 외부로부터 다양한 과제를 받아 수행한다. 수주받은 과제가 연구실의 연구비 수혜액, 즉 예산을 결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연구 과제는 다시 정부지원사업과 그 외 정부·기업 과제로 나뉜다. 전자가 연구실의 분야에 맞춰 정부가 과제를 발주하고 지원금을 주는 형태라면, 후자는 정부·기업이 공고한 과제를 연구실이 지원해 연구용역의 대가로 연구비를 받는 형태다. 정부지원사업엔 일반적인 연구 과제부터 BK21, IBS 사업 등이 있다. 뒤로 갈수록 사업의 특수성이 높아 수혜 대상의 폭이 좁다. 한국연구재단이나 각종 정부 부처에서 발주하는 가장 일반적인 연구 과제는 해당 영역과 관련된 모든 연구실이 잠재적 수주 대상이 된다.
그 이외의 정부지원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연구실은 한정적이다. 예를 들어, 대학원생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BK21 사업은 2019년 기준 2,698억 원 가량의 예산이 전국 525개 사업단에 배분됐다. 세계 수준의 기초 연구를 위해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 IBS 사업은 같은 해 2,365억 원가량이 30개 연구단에 배분되며 더욱 높은 집중도를 보였다. 이런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된 연구실의 대학원생들은 연구 주제 선정과 예산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IBS 사업에 참여 중인 대학원생 B 씨는 “실제로 사업을 통해 연구비가 넉넉하게 지원되면서 연구를 위한 재료 구입이나 장비 사용에 제한을 크게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원 사업에서 소외된 연구실은 정부나 기업 수행 과제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때 수행하는 과제는 연구실이 기존에 수행하던 연구와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수혜를 받는 연구실이 수행하는 연구 과제는 대부분 연구실의 연구 주제와 부합하지만,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공고한 과제를 지원할 때는 정부와 기업을 위한 맞춤형 연구를 해야 한다. 대학원생 A 씨는 이런 구조로 인해 대다수의 연구실이 어쩔 수 없이 소위 ‘돈 되는 연구’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연구와 ‘돈 되는 연구’ 사이에서 생긴 괴리는 대학원생들에게 회의감이 돼 돌아온다. A 씨는 “오히려하고 싶은 연구가 뚜렷하고, 미리 연구실 정보를 꼼꼼히 찾아 입학한 학생들이 연구실 생활을 힘들어한다”고 덧붙였다.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연구실에선 당장 애로사항이 발생한다. 재료나 실험장비 등을 새로 구입하기 어려운 연구실은 연구를 조금 미루거나 실험 필수품을 아껴 쓰면서 긴축 상태에 돌입한다. 대학원생 A 씨는 “작년 쯤 연구실에 연구비가 부족했을 때는 실험을 할 때 깨지거나 금이 간 플라스크 등을 임시방편으로 붙여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수들도 재정난으로 인한 타격을 입는다. 고려대 윤태웅 교수(전기전자공학부)는 “금전적인 문제가 심각하면 교수가 사비로 연구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박상욱 전문위원은 연구실 사이에 발생하는 연구비 수혜 격차의 근본적 원인으로 연구의 시장화를 지적했다. 특정 연구 분야에 대한 정부·기업의 수요와 연구자 공급이 분야마다 다르기 때문에 연구비 수혜액의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연구실이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인공지능과 같은 4차 산업 관련 분야처럼 연구실의 분야가 정부의 관점에서 전도유망해 보이고 필요한 기술로 인정받아야 한다. 박 전문위원은 “현재 연구비는 철저히 시장 논리에 따른 경쟁을 통해 수주를 하고 있다”며 “시장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왜 연구비가 차등적으로 연구실에 분배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도연 기자, 「연구의 시장화, 그 속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지금」, 『서울대저널』, 2019.10.21, http://www.snujn.com/news/44471, 2021.02.10 중 일부 |
– ‘분류’의 기준은 명확하고 객관적인 용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 ‘분류’를 계층적으로 전개해 나갈 때는 첫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에 이르는 각각의 기준들 사이에 성층적인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 ‘분류’된 각각의 개념이나 대상들 사이에는 겹침이 없어야 한다.
– ‘분류’된 각각의 개념이나 대상은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
– ‘분류’에서 제외되는 하위 개념 혹은 대상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비교
비교는 어떤 대상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와 관련되는 다른 대상과 견주어 가면서 기술하는 것이다.
– 하나의 대상만을 놓고 살펴볼 때 잘 드러나지 않았던 특성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데 용이하다.
오롯이 하나의 대상만 놓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다른 대상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견주면서 기술할 때, 하나의 대상만 살펴볼 때 잘 드러나지 않았던 특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겉으로 유사하게 보이는 두 대상이 실제로는 얼마나 다른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 겉으로 다르게 보이는 두 대상이 실제로는 얼마나 유사한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 두 개, 또는 세 개의 대상을 놓고 우위를 결정해야 하거나,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판단의 근거(기준)를 확보할 수 있다.
아무 대상이나 나란히 놓고 기술한다고 해서 바로 효과적인 비교가 성립하지 않는다. 글쓰기에서 비교의 방법을 활용하고자 할 때는, 대상들과의 유사성, 또는 차이점을 보임으로써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더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선정해야 한다.
– 의미 있는 비교가 성립하려면 일차적으로 상위 개념을 공유하는 하위 항목들 사이에서 비교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 동일 범주의 하위 항목들 중에서도 어떤 대상이 필자가 살펴보고자 하는 대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비춰줄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예) 고령화 사회에서 문제적 질병으로 부상하고 있는 ‘파킨슨병’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 어떤 대상을 비교 대상으로 선정하는 것이 좋을까?
‘노인성 질환’이라는 상위 범주 중에서도 심혈관 질환보다는 뇌신경계 질환 중에서 비교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뇌신경계 질환 중 뇌경색, 뇌출혈 등의 질환보다는 ‘치매’ 증상을 동반하는 ‘알츠하이머’와의 비교를 통해 ‘파킨슨병’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비교 대상을 고르는 데 꼭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비교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라도 공통점, 또는 차이점에 대해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설명할 수 있다면 참신한 글이 될 수 있다.
– 특히, 비교 대상을 동일 범주 바깥의 것으로 확장하는 것을 ‘유추’라고 한다. 유추는 차원이나 범주가 다른 대상들을 공통점을 중심으로 새롭게 연결하면서 사고를 확장시킨다.
각 대상이 지닌 속성을 세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비교하면, 두 대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발생하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세부적인 기준들을 적용할 때에는 그 기준을 무작위로 나열하지 말고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열해야 한다. 세부적인 기준들 중 핵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을 나누고, 기준들 사이의 연관성, 선후 관계 등을 고려하여 비교 순서를 결정하면 글을 읽는 독자가 대상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을 비교표로 만들어 정리하면 글을 쓸 때 활용하기 좋다.
기준 | 알츠하이머 | 파킨슨병 |
원인 | 단백질 침착에 의한 뇌 손상 | 도파민 부족에 의한 뇌 신경 세포 소실 |
초기 증상 | 인지 기능 저하 | 운동 기능 저하, 떨림 |
치매 발현 시기 | 처음부터 | 나중에 |
기억 장애 특징 | 힌트를 주어도 기억하지 못함 | 힌트를 주면 기억해 냄 |
진행 과정 | 병변이 밖에서 안으로 퍼짐 | 병변이 안에서 밖으로 퍼짐 |
두 대상을 견주어 설명하는 방식을 비교와 대조로 구분하기도 한다. 차이가 있음을 전제하면서 유사성을 드러내는 것이 좁은 의미의 비교라면, 대조는 공통점을 인정하면서 차이점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어떤 경우이든 필연적으로 두 대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고려하게 된다. 다만, 동일한 두 대상을 비교의 방식으로 기술하더라도, 글의 목적에 따라 공통점을 밝힐지, 차이점을 밝힐지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e-스포츠와 일반 스포츠를 비교하는 글을 쓰는 경우, 글의 목적이 ‘e-스포츠를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행사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라면, e-스포츠가 어떤 점에서 일반 스포츠의 속성과 유사한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반면, 앞의 주장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는 글이라면 e-스포츠가 일반 스포츠와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혹은 ‘스포츠’라고 규정하기 어려운가를 밝혀야 한다.
[예문]
가상(VR)・증강현실(AR) 기반 Dynamic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 인정 가능성
2017년 10월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e-스포츠가 각 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면면히 살펴보았을 때 올림픽이 추구하는 정신과 상당히 부합함을 밝혔다. 또한, 프로게이머들이 e-스포츠 경기를 준비하며 수행하는 높은 강도의 훈련과 시합에서의 경쟁수준은 스포츠와 흡사하다는 점을 들어 올림픽 정식 종목의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다만, 우려 되는 것은 전통적 스포츠 종목과 같이 100년 가까이 진화해오며, 앞으로도 모두가 즐기고 그 명맥을 이어갈 만한 게임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e스포츠시대의 시작과 명맥을 함께한 스타크래프트가 타 게임에 비해 유난히 길었던 10여년의 인기를 누렸지만 이 기간은 전통적 스포츠로서의 입지와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e-스포츠 분야에서는 특정 게임의 수명이 전통적 스포츠와 같은 역사를 이어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보다 보편적으로 스포츠로 인지될 수 있는 게임을 고안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으로써 가상(VR)・증강현실(AR)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신체활동을 극대화한 게임을 고안하고 있다. e스포츠는 게임의 특성상 액션, RPG, 전략 시뮬레이션, FPS 등 특성상 여러 장르로 구분되며 팬 층도 취향에 따라 나뉜다. 가상(VR)・증강현실(AR) 기반의 e스포츠 게임 콘텐츠는 선수가 몸을 직접 움직이며 중・강도 수준의 액티브한 신체활동을 수행하기 때문에 게임의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 등을 수행할 수 있는 장르로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 2017년 미국과 한국에서 열린 ‘VR 챌린저 리그’와 ‘경기도 VR 게임 페스티벌’에서 허공속의 손과 발을 사용하며 총을 소지하고 뛰는 동작 등은 e-스포츠에서의 신체적활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키보드로만 조작이 가능했던 슈퍼스타들의 경기도 스포츠 종목을 불문하고 가상(VR)・증강현실(AR) e스포츠로 개발될 수도 있다.
최정호·이제욱, 「가상・증강현실 기반 e-스포츠의 스포츠화를 위한입법 개선방안 연구」,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법』, 2019, 115면. |
– 비교의 목적을 명확하게 설정했는가?
– 비교의 대상으로 적절한 대상을 선정했는가?
– 비교 기준을 다양한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설정했는가?
정의
정의는 어떤 대상이나 용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글쓰기 방법이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정의하기는 단지 사전적인 의미를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개념 형성 과정을 정밀하게 살펴봄으로써 본질에 접근하는 과정을 포괄한다. 이 과정에서 용어 및 개념이 통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대상을 새로운 의미로 규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 정의는 하나의 대상이 가진,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될 수 있는 기본적인 특성을 포착하는 데서 시작한다.
안경을 정의하려면 안경의 다른 기능들보다 사물을 좀더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시력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한 편의 글에서 사용되는 핵심점인 개념에 대해 필자와 독자가 의미를 공유하게 한다.
독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전문적인 용어를 먼저 설명해 줄 때, 이를 바탕으로 좀더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쳐나갈 수 있다.
– 단어의 명확한 의미를 상기시킴으로써 대상의 기본적인 속성이나 본질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예문]
1975년에 발표되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진리의 메타포로 간주되던 시선을 권력의 기제로 탈바꿈시켰다. 근대 이전의 군주 권력이 만인이 한 사람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던 시선으로 특징지어졌다면, 근대의 규율 권력은 한 사람의 권력자가 만인을 감시하는 시선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었다. 만인이 한 사람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는 사회는 “스텍터클의 사회”이다. 반면에 한 사람이 만인을 주시하는 규율 권력의 사회는 “감시 사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까? 푸코는 감옥과 형벌의 역사에서 이 변화에 대한 단서를 찾았는데, 죄수를 벌할 때 신체에 가혹한 형벌을 가하던 전통적인 체벌 형식이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엽 동안에 죄수를 감옥에 감금하는 징역형으로 바뀐 것에 주목했다. 징역형을 처벌을 덜 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잘 처발하고” “더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처벌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징역형은 형벌의 기본 원칙이 육체에 대한 고통에서 영혼에 대한 규율로 바뀌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푸코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고 이를 추동한 것이 다름 아닌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1791년에 제안한 원형감옥 파놉티콘이라고 보았다. 파놉티콘은 당시 망원경과 비슷한 광학기구를 지칭하는 용어로 가끔 사용되었는데, 벤담은 그리스어로 “e다 본다 “f(Pan: all + Opticon : seeing 또는 vision)라는 의미를 가진 이것을 자신이 설계한 감옥을 지칭하는 용어로 새롭게 사용했다.
홍성욱,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책세상, 2002, 21-22면.
|
대상을 정의내리는 작업은 단순히 사전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대상의 의미는 고정불편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꼭 한 가지 방식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에 등재된 개념이라고 해서 꼭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수동적으로 사전적 정의를 수용하기보다는 스스로 대상의 의미를 규정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대상이 특정한 의미로 규정되기까지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의 방법을 활용해 사전적 정의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대상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어원을 확인하는 방법
새로운 사물이나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사용되던 단어를 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원은 하나의 대상이 특정 의미로 확정되는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 볼 수 있게 하는 매우 유용한 힌트를 제공한다.
역사 및 배경을 찾아보는 방법
어원과 함께 의미가 구성된 시점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는 것도 대상의 본래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용례를 확인하는 방법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떤 대상이나 용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한번 정의된 의미가 그대로 고정되는 것도 아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정의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사회적·문화적 변화에 따라 대상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때로는 지칭 대상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관련되는 문헌을 찾아보고, 특정한 용어의 용례를 분석함으로써 의미의 변천사를 확인하는 것은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범주를 확정하고 그 의미를 명확히 드러내는 데 꼭 필요한 작업이다.
유사어 및 동의어, 반의어와 비교하는 방법
정의를 내리는 과정에서도 하나의 대상만 놓고 살펴보는 것보다 두 개 이상의 대상을 함께 견주어 살펴보는 것이 특정 대상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다. ‘경력, 이력, 스펙’, ‘적정기술, 중간기술’처럼 비슷한 대상을 지시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여주는 유사어들을 비교함으로써 특정 대상이 함의하는 내용을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고, ‘지식/지혜’, ‘좌익/우익’, ‘기상/기후’처럼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반의어들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의미는 분화시키는 대상의 본질적인 특성을 좀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 자신의 글에서 사용한 핵심 용어의 개념이 명확하게 규정되었는가?
– 정의문이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적인 특성을 포착하고 있는가?
– 정의문의 유개념과 종차가 정확하게 구성되었는가?
– 정의하고자 하는 대상의 어원, 역사적 배경, 용례 등을 확인해 보았는가?
묘사
묘사란 사물이나 상황 그리고 대상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언어로 그림을 그리듯 재현하는 것이다. ‘묘사(描寫)’를 축자적인 의미대로 이해한다면 그 대상이 시각적인 것에 한정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소리, 냄새, 맛, 촉감 등 인간이 감각하는 모든 대상은 묘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두 가지 이상의 감각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할 때 묘사의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특정 대상들을 필자가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보고, 만졌을 때의 느낌을 독자가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최대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표현으로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자에게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자극하는 묘사를 잘 활용하면 주관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데뿐만 아니라 논증 과정에서 독자를 설득하는 데도 매우 유익하다. 환경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간의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인한 생태 오염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학술 논문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위기를 뛰어난 묘사로 기술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예문]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서론
미국 대륙 한가운데쯤 모든 생물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마을이 하나 있다. 이 마을은 곡식이 자라는 밭과 풍요로운 농장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봄이면 과수원의 푸른 밭 위로 흰 구름이 흘러가고 가을이 되면 병풍처럼 둘러쳐진 소나무를 배경으로 불타듯 단풍이 든 참나무, 단풍나무, 자작나무가 너울거렸다. 어느 가을날 이른 아침 희미한 안개가 내린 언덕 위에서는 여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조용히 밭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사람의 모습도 때때로 눈에 띄었다.
길가에는 월계수, 인동나무, 오리나무, 양치식물 그리고 들꽃이 연중 그 자태를 뽐내며 지나는 여행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나무 열매와 씨앗을 먹고사는 수많은 새가 눈밭에 내려앉는 겨울철에도 길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 일대는 풍부하고 다양한 새들로 유명했는데, 봄가을에는 이동기를 맞은 철새 무리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려고 멀리서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들은 가까운 시냇가로 향했다. 이 하천은 산에서 내려온 차갑고 맑은 물이 넘쳐흘렀고 송어가 알을 낳는 그늘진 웅덩이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다. 최초의 이주자가 집을 짓고 우물을 파고 헛간을 세운 이후 이런 풍경은 계속 유지되어왔다.
|
묘사 대상의 외양, 또는 인상을 주관적으로 나타내었는지, 객관적으로 나타내었는지에 따라 묘사는 주관적 묘사와 객관적 묘사로 나뉜다.
주관적 묘사
‘주관적 묘사’는 대상 그 자체의 물리적 정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필자의 주관적 인상이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는 서술 방식이다. 다음 묘사문은 대상 자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촉발하는 감각적인 느낌을 다양한 비유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예시]
불안인지 환희인지 모를 것으로 터질 듯한 마음을 부채질하듯 이 벌판의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풀들도 축 늘어졌던 잠에서 깨어나 일제히 웅성대며 소요를 일으킨다. 그러나 소나기의 장막은 언제나 우리가 마을 추녀 끝에 몸을 가리기 전에 우리를 덮치고 만다. 채찍처럼 세차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복더위와 달음박질로 불화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면 우리는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아아, 그건 실로 폭발적인 환희였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미친 듯한 환성을 지르며 비를 흠뻑 맞았고, 웅성대던 들판도 덩달아 환희의 춤을 추었다. 그럴 때 우리는 너울대는 옥수수나무나 피마자나무와 자신을 구별할 수 없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웅진출판, 1992, 27-29면) |
객관적 묘사
‘객관적 묘사’란 어떤 대상이 지닌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필자의 주관적인 느낌은 배제하면서 그 대상의 속성을 사실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아래 묘사문에는 ‘시계꽃’ 중심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객관적 묘사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정보의 전달이라는 과학자의 ‘전달 동기’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통상적으로 묘사 내용과 관련된 부연 설명의 정보와 함께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웃집 정원에 있는 시계꽃을 한번 들여다보자. 그것은 마치 꽃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공학자가 설계한 구조물 같다. 아니, 헬리콥터와 사랑에 빠진 어떤 여인이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시계꽃에는 층이 져 있다. 다섯 개의 초록색 꽃받침 잎과 다섯 개의 초록색 꽃잎이 밑바탕을 형성한다. 그 위에는 끝이 가시처럼 뾰족하게 변한 꽃잎들이 말미잘 같은 모양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꽃잎의 색깔은 맨 바깥쪽에서부터 엷은 자주색, 흰색, 자주색(이 부분은 폭이 약간 넓다), 초록색, 자주색(이 부분은 폭이 좁다), 연녹색 순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중심부는 짙은 자주색이다. 중심부에는 약 2.5센티미터 높이의 자루가 솟아 있다. 자루의 중간쯤에는 자전거의 브레이크 패드를 닮은 다섯 개의 수술이 달려 있는데, 그 아래쪽에는 노란색 꽃가루가 반짝인다. 수술 위에는 세 개의 암술머리 조각이 바깥쪽으로 비스듬히 벌어져 있다. 마치 모자 위에 헬리콥터의 회전 날개를 달아 놓은 듯한 형상이다. (중략)
시계꽃은 균등 분할이 가능한 원형이다. 원형의 꽃에는 다양한 종류의 벌레들이 접근할 수 있다. 어느 쪽에 착륙하건, 그대로 꽃의 중심부로 걸어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원형의 꽃들은 접근하기 쉽다. 벌레의 처지에서 보면 그들은 매우 민주적이다.
샤먼 러셀, 석기용 옮김, 『꽃의 유혹(비밀에 가려진 꽃의 삶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제이북스, 2003, 59~60. |
묘사는 대상이 간직한 정보나 필자가 느끼는 감각적인 인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가운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이는 기술 방법이다. 그렇기에 묘사에서는 대상에 대한 지배적인 인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술적인 글에서는 주로 객관적 묘사가 많이 쓰지이만, 객관적 묘사에 주관적인 묘사를 적절히 배합하면 더욱 인상적인 묘사문을 구성할 수 있다.
첫째,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세부 사항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묘사하는 대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이 과정에서 얻어낸 정보를 충실히 기록해 둔다.
둘째, 어떤 사항에 초점을 두어 묘사할 것인지 결정한다.
대상의 총체적 인상에 기여하는 세부 사항의 목록을 작성한 후, 중심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 유의미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을 구분하여 무엇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또 무엇을 생략할지를 판별해야 한다.
셋째, 대상에 대한 지배적 인상과 세부적인 사항들을 긴밀하게 연관시킨다.
대상의 세부적인 내용들을 단순히 열거할 것이 아니라 전체와 부분, 그리고 부분과 부분이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이때 전체적인 윤곽을 먼저 그린 후 세부적인 사항을 묘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상의 외양을 먼저 수치를 이용해서 서술한 후, 각 부분의 공간적 배치를 서술하고 각 부분들 사이의 기능적인 관련을 서술한다.
넷째, 정확하고 사실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좋다/나쁘다’, ‘옳다/그리다’와 같은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나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크다/작다’, ‘멀다/가깝다’와 같은 상대적인 표현보다 정확히 계량될 수 있는 수치, 거리, 속도, 질량 등을 나타내는 계량적 언어를 사용한다.
다섯째, 독자들에게 더 익숙한 사물에 견주어서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흉터가 동그랗게 남았다’보다는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흉터가 동그랗게 남았다’처럼 표현하는 것이 머릿속에 더 선명한 그림을 그리게 한다.
서사
서사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사건 추이나 대상의 변화를 서술하는 것이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 영화, 드라마와 같은 문학 양식이 서사의 방법을 중심적으로 활용하는 전형적인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사는 비단 문학 양식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비롯한 문학 양식에서 서사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의 행동과 이에 의해 촉발된 여러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독자들이 능동적으로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마찬가지로 학술적인 글에서도 핵심적인 사건이나 장면들의 인과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 서사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논쟁적인 사건을 다루는 학술 논문이나,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장면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서술하는 실험 보고서처럼 사건의 추이와 변화 과정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핵심 내용으로 자리 잡는 경우 서사적 전개 방식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데 상당히 효율적이다.
– 대상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주요 사건들을 일차적으로 시간적인 순서로 정리해 본다. (사건의 전개 과정)
서사의 내용을 이루는 각각의 사건은 대체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포함하고 있다. 전체 사건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개의 사건들 중 핵심적인 사건과 부차적인 사건을 구별하고, 주요 사건이 발생한 시간 순서대로 배치해 보면 전체 사건의 윤곽이 분명해진다.
– 사건의 전개 과정을 단계나 양상으로 나누어본다.
학술적인 글의 대상이 되는 사건들은 대체로 긴 시간에 걸쳐,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건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할 것인가와 사건을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 서술할 것인가를 정하도록 한다.
– 시간에 따른 변화, 사건과 사건의 인과 관계의 의미를 파악한다.
사건의 전개 과정이 정리되면, 어떤 일이 발생한 뒤에 생겨난 다른 일에 대해 말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중점적으로 기술해 본다. 각각의 사건들이 이후에 ‘어떻게 진행되는가’, 혹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가’를 기술하면서 각 개별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긴밀한 인과관계를 분명히 표현해 본다.
– 사건들을 재배치해 본다.
현실 세계에서는 사건이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발생하지만, 글을 쓸 때 이 사건들을 꼭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배치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건을 먼저 배치하고, 어떤 사건을 나중에 배치하는 것이 독자가 전체 대상을 이해하는 데 유리할지 판단하여 글을 구성한다. 여러 사건을 순차적으로 배치하면 시간에 따른 변화가 잘 드러난다. 시간에 따른 순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역행적으로 구성하면, 변화의 양상보다는 그 이유에 관심이 놓이게 된다.
[예시]
세계를 부수는 목소리의 진화와 확장
2014년 미국에서 ‘#여자들은_모두_겪는다(#Yes_Al_Women)’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면서 여성들의 말하기가 이어졌고, 2017년 10월 뉴욕타임즈가 헐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의 성추문을 보도하면서 미투 운동의 도화선이 촉발됐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와인스타인의 물적 기반을 정확히 타격해 무너뜨렸다. 또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수사를 이끌며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했던 뉴욕주 검찰총장도 최근 가해자로 지목되어 바로 사퇴했다. 한국에서는 “노벨문학상을 고대하던” 원로시인 고은 씨의 성폭력 가해가 폭로되었고, 스웨덴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한림원 종신위원이 가해자로 고발되어 사상 처음으로 2018년 노벨문학상 발표가 취소되기도 했다.
처음 미투 운동이 시작된 당시 할리우드에서도 ‘유명 여배우’들의 ‘뒤늦은 폭로’나 성평등 주창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없지 않았다. 이때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미투 운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바로 라틴계 여성농장노동자단체에서 보낸 ‘자매들이여(Dear Sisters)’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그녀들은 “슬프게도 그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현실이어서 놀랍지 않다” 면서 여성 농장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살아남기 위해 당하는 침묵 속 고통을 전했고, 그럼에도 “당신들이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믿고 함께 곁에 설 것”이라며 미투 운동에 동참을 선언하면서 여성들의 연대에 힘을 실었다. #미투를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Time’s Up’으로, ‘#PayMeTo’로 넓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5년 2월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이 시작되고 ‘#〇〇계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통한 고발과 대응이 계속되어온 와중에, 2018년 2월 서지현 검사의 JTBC 인터뷰 증언으로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 촉발되는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일각에서는 “왜 한국은 이제야”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여성들은 늘 말하고 있었고 여성운동 역시 <성폭력생존자 말하기대회>와 <첫사람 운동> 등 명명은 달랐어도 피해(생존)자의 곁에 서는 활동을 계속해 왔다. 지난 30여 년간 지속되어온 반성폭력 운동과 이를 통해 형성된 제도화의 성과가 현재 진행 중인 미투 운동을 가능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혹자들은 미투 운동이 잦아들고 있다거나 변질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미투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들’이 바라는 바일 뿐이다. 최근에는 ‘#동일범죄_동일처벌’을 구호로 온라인카페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누드모델 몰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2차에 걸쳐 열렸다. 자발적으로 모여든 분노한 여성들의 규모에 경찰까지도 놀라고 언론은 앞으로 이 흐름이 어떻게 진화해 갈지에 주목하고 있다. 그 외에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는 달라지지 않는 기득권 정치에 대한 저항으로 ‘#투표용지에_여성정치인’이라는 캠페인이 시도되기도 했다.
김은희, 「지금 여기의 미투 운동, ‘다시, 위험한 상상력’을 불러내다」, 『여/성이론』(38), 2018, 32-24면 |
<참고자료>
서울대학교 대학국어편찬위원회 편, 『대학국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서울대학교 대학글쓰기1 교재편찬위원회 편, 『대학글쓰기1』, 서울대학교출판부, 2019.
조셉 윌리엄스·그레고리 콜럼, 윤영삼 옮김, 『논증의 탄생』, 홍문관,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