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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는 빨리, 수정은 여유 있게 하기

쓰는 것이 곧 고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글을 쓴다는 일은 수정 작업의 연속이기도 하다. 초고 쓰기와 수정하기는 성격이 다른 일이다. 초고 작성은 최대한 빠르게, 수정은 여러 번 천천히 해야 하는 작업이다. 초고를 쓸 때는 한 번에 완벽하게 쓰려고 하기보다 자유롭게 써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 수정할 때는 빨리 마치려 하기보다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 좋다. 따라서 초고와 수정을 동시에 진행하기보다 초고를 최대한 빨리 쓰고 수정을 되도록 오래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초고 쓰기와 수정하기의 이런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는 사람이 글쓰기 계획을 잘 세우고 무리 없이 수행하는 법이다.

 

내 글의 ‘편집자’가 되기

자신의 글을 ‘수정’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글을 스스로 편집하는 ‘편집자’가 된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면 글을 더 과감하게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 영화를 편집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공들여 찍은 장면도 편집의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삭제되기도 한다. 이미 쓴 것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편집자의 태도를 가져야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자르고, 지우고, 버릴 수 있다. 수정할 때는 절대로 아깝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수정본 파일을 따로 만들기

여러 개의 파일을 만들어 글을 쓰면 작업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효율적이다. 초고 파일 그대로 수정 작업을 진행한다면 적극적인 수정이 어렵다. ‘리포트_1차 수정’ 등 다른 제목의 복사본을 만들어 수정을 진행하면 문단의 순서를 바꾸거나 불필요한 문단을 빼는 등의 수정을 보다 과감하게 할 수 있다. 몇 가지 대안 사이에서 고민이 되는 경우에도 다른 파일에서 작업을 한 뒤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 별도의 글로 써야 하는 내용이라면 빨리 다른 파일에 적어 두고 다시 쓰던 글로 돌아올 수도 있다.

 

시간적, 물리적 거리를 두기

수정을 할 때는 초고에 대한 시간적 거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스티븐 킹은 약 6주의 시간적 거리를 두고 수정을 한다고 했다. 이 정도의 시간은 확보하기는 힘들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을 두고 수정하기를 권한다. 초고가 완성되면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하루나 이틀 정도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자료들을 추가로 검토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생산적이다. 바로 내일이 마감이라면 산책 등을 하며 기분을 전환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수정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시간적 거리를 두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향식 수정 원칙 기억하기

퇴고 과정은 그저 맞춤법을 검토하고 비문을 수정하는 정도의 작업이 아니다. ‘퇴고’라는 말도 ‘퇴’를 ‘고’로 바꾸는 어휘 차원의 윤문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교열’보다 먼저 필요한 작업은 글의 논리적 전개를 살피고 논리성을 강화하는 ‘개작’ 즉 ‘다시쓰기’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이 글을 쓸 때 설정했던 연구 질문과 연구 주제로 되돌아가서 글의 구성과 흐름이 글의 목적과 문제의식에 부합하는지부터 검토해야 한다. 서론, 본론, 결론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점검하고 나서 각 장, 각 문단과 각 문장 사이의 연결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비문과 오•탈자를 수정하거나 지엽적인 부분을 고치는 것이 좋다. 물론 실제 수정이 반드시 이 순서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우선 하향식으로 수정해 나간다는 원칙을 갖고 임해야 효율적으로 글을 수정할 수 있다.

 

서론, 본론, 결론 쓰기 체크리스트

 

서론

□연구 대상이나 주제 설정의 배경이 드러나 있는가
□기존 연구와의 차별성이 드러나 있는가
□글의 목표, 즉 이 글에서 답하고자 하는 연구 질문이 드러나 있는가
□연구의 의의가 드러나 독자에게 글을 읽을 동기를 부여해주고 있는가


본론

□하위 주장들이 잘 구성되었는가
□각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충분한가
□문단과 문단이 잘 연결되어 있어 독자가 그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는가

 

결론

□글의 내용을 적절하게 재진술하고 있는가
□연구 주제의 의의나 시사점이 잘 드러나 있어 독자에게 중요성을 알리고 있는가
□연구 결과의 적용 가능성, 향후 논의의 방향을 제안하고 있는가

 

소리 내어 읽기와 출력하여 읽기

많은 사람들이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며 수정하는 것을 권한다. 소리 내어 읽을 때 원활하게 끊어 읽히지 않거나, 숨이 차거나, 앞으로 몇 번씩 되돌아가며 읽어야 한다면 문장 수정이 필요하다는 징후다. 또 모니터 작업 창을 통해 보기보다 인쇄하여 검토하는 방법이 좋다. 자신이 쓴 글에는 이미 시각적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주의 환기를 위해서는 출력물로 보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때 다른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에 옮겨 편집하거나, 검토한 내용을 적기 위해 여백을 주거나, 용지 크기와 글자 크기, 글자체 등을 바꾸어서 출력해보면 자기 글을 더욱 낯설게 만들 수 있어 중요한 실수를 못 보고 넘기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자기 글의 독자로서 1인 2역하기

자신의 글을 읽어줄 독자를 찾아 수정 과정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만일 여의치 않다면 스스로 독자가 되어서 자신의 글을 독자의 시각에서 읽어야 한다. 이때 독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가상의 독자를 상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상정했던 예상 독자를 다시 머릿속에 떠올려보는 방법도 좋다. 학술문이라면 독자를 이중으로 상상하며 글을 두 번 이상 점검하는 것이 좋다. 지도교수 등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을 떠올리며 한 번, 그리고 막 이 분야에 입문한 후배나 신입생을 떠올리며 한 번 더 수정을 하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기를 할 때처럼, 독자로서 하고 싶은 말을 소리 내어 하거나 여백에 모두 적어 보는 것도 독자의 역할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이다.

 

형광펜 수정법 활용하기

스스로 이 글을 읽어야 하는 독자라고 가정하고 글에서 강조되고 있는 내용,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목, 필자의 입장을 잘 드러내는 부분에 표시를 해가면서 읽어 나간다. 자신이 표시한 부분이 독자들이 주의 깊게 읽고 기억하게 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자신이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과 중요한 정보가 잘 서술되어 있는지를 확인해본다. 형광펜 표시가 없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살피면 논의의 밀도가 떨어지거나 논지를 이탈하는 부분이 없는지도 쉽게 검토해볼 수 있다.

 

키워드 중심 수정법 활용하기

소논문이나 학위논문 등의 학술문에는 독자를 위해 초록이나 핵심어 목록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핵심어는 글에 반복해서 등장하고, 독자도 이러한 핵심어의 반복을 중심으로 글의 내용을 더 쉽게 파악한다. 따라서 학술문을 수정할 때는 핵심어가 나올 때마다 동그라미 표시를 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표시가 없는 단락이 있다면 내용상의 관성이나 긴밀성이 약화되는 부분이므로 이 부분을 핵심어를 포함한 문장으로 다시 쓰면 논지가 더 선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장 별로 키워드가 다를 수도 있는데, 이 경우 해당 장에 일관되게 그 핵심어가 등장하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워드카운트 사이트(www.wordcount.com)를 활용하여 어휘 빈도와 자주 사용된 어휘들 간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글이 긴밀하게 쓰였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핵심어가 아닌데도 자주 등장하는 어휘가 있다면 그 어휘와 핵심어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자기 글 스스로 요약해보기

스스로 자기 글의 독자가 되어 글을 읽어보는 것이 수정의 기본이다. 이때 글을 스스로 요약해보면, 독자가 자기 글의 흐름과 논지를 잘 파악할 수 있는지 검증할 수 있다. 실제로 학술문을 쓸 때 요약을 위해 내용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을 선택하는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 즉 바꿔쓰기 과정에서 더 좋은 어휘가 생각나거나, 초록이나 요약본을 쓰면서 논리가 더 선명해지는 경우도 많다. 주변의 동료에게 리뷰를 부탁할 때 글의 각 부분을 간단히 요약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독자에게 글의 논지가 잘 전달되는지 검증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요약한 내용을 구조화해 보기

시간이 충분하다면, 각 부분의 논점이 명확하게 재진술되는 요약문을 쓰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하여 전체 요약문을 작성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논리상의 연결이나 맥락화가 부족하거나 연결어가 빠져 있으면 보충하고, 순서가 맞지 않는다면 수정하며,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할 수 있다. 또 부분들 간의 관계를 살펴 구조도를 그려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각 부분이 서로 또는 전체 연구 주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관계가 글에 잘 드러나 있는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약문이나 구조도를 구상 단계에 작성한 메모나 개요와 비교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글쓰기가 이루어졌는지 점검한다.

 

논증에 맹점이 없는지 점검하기

논증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논증에 대해 반례가 될 수 있는 사례는 없는지 확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상 반론에 대한 반박을 글에 포함할 수 있도록 수정해 나간다. 또한 논증에 꼭 필요한 전제나 근거 제시가 생략되어 있지는 않은지, 논증에 제시된 논거가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도 빠짐없이 생각해본다. 여러 성별, 다양한 계층, 다른 입장이나 신념을 가진 독자가 되어 자신의 글을 읽는다고 가정했을 때도 그 주장이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는지도 확인하며 논증을 강화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을 실제에 적용하거나 주장의 결과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글에 포함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추가한다.

 

분량을 늘리거나 줄이기

완성된 초고의 분량과 글의 요구 분량을 맞추어 보고, 어느 정도 줄이거나 늘려야 하는지 파악한다. 분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면 다시 글의 목적으로 돌아가 부합하지 않는 부분부터 줄여 나간다. 글의 분량이 모자란다면, 논리적 비약이 있는 부분에는 연결을 해주고, 예시나 사례 제시가 더 필요한 부분을 찾아 보완한다. 소결이나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표시해 두었다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보충한다. 글이 심심하다면 첫 문장이나 서두의 인용구 등을 추가하여 독자의 눈길을 끌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말 문장 점검하기

모국어 사용자로서 우리말 문장을 잘 쓸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고 안심하기보다는 지금 외국어로 글을 쓰는 중이라는 상상을 하며 퇴고에 임하는 편이 좋다.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의 맞춤법 검사 기능에 의존하기보다는 확신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빠짐없이 확인하는 일이 올바른 우리말 문장을 구사하기 위한 습관이다. 특히 띄어쓰기와 외래어 표기법 두 가지는 맞춤법 검사 기능만으로 완벽하게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최종 수정 단계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이나 국립국어원 웹사이트의 검색 기능 등을 활용하여 점검해야 한다.

 

학술 글쓰기에서 자주 틀리는 의존명사 띄어쓰기 점검하기

지: “이와 같은 사실이 밝혀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와 같이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표현인 경우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쓰고, “이번 조사에서는 우리 대학 신입생이 어떤 점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살펴보았다.”와 같이 질문에 관해 진술할 때는 연결어미이므로 붙여 쓴다.


데: “도시 외곽의 주거지가 쇠퇴하는 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가?”와 같이 영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한 표현에서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쓰고, “이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가 행해졌는데, 2000년대 이후 변화상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미비하다.”와 같이 연결어미인 경우 붙여 쓴다.


바: “이와 같은 입장은 최근 비판받은 바가 있다.”와 같이 뒤에 조사가 오는 경우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쓰고, “이러한 논의가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바”와 같이 하나의 절을 형성하는 경우 연결어미이므로 붙여 쓴다.

 

군더더기 표현이나 외국어식 표현 점검하기

~적
~에 있어서, ~에 있다
~과의, ~에의
~로 인하여, ~에 대하여, ~을 통하여, ~을 위하여, ~에 의하여
~보여지다, ~되어지다
~에 다름 아니다

 

최종 체크리스트 확인하기

□ 수정 과정에서 글의 강조점이 달라졌을 수 있으므로 제목, 목차, 첫 문장 등도 다시 점검한다.
□최종 단계의 수정에서는 주요 개념어와 그 표기 등을 워드프로세서의 ‘찾기’와 ‘찾아바꾸기’ 기능을 통해 통일한다.
□모든 문장의 어미 부분만 읽어보면서 ‘~할 수 있다’나 ‘~것이다’ 등이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리듬을 점검한다.
□생략해도 의미에 차이가 생기지 않는 군더더기 표현이나 반복되는 내용이 없는지 점검한다.
□모든 문장의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는지 확인한다.
□모든 오•탈자가 완벽하게 수정되면 좋겠지만, 특히 인명이나 결과값 등은 글 전체의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주의 깊게 살펴본다.
□인용 양식이 요구에 맞게 채택되었는지 확인하고, 혹시라도 인용 표시가 빠진 곳은 없는지 살핀다.
□어떤 내용이 처음 언급되거나 인용되었을 때(초출)과 두 번 이상 언급되거나 인용될 때(재출)에는 한자나 영어 병기 또는 주석 작성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최종 수정 단계에서 다시 점검한다.
□모든 표와 그림, 그래프에 번호가 잘 달려 있는지 확인한다.
□낫표, 꺾쇠, 따옴표 등의 부호가 요구에 맞고 일관되게 사용되었는지 점검한다.

 

제시간에 수정 마무리하기

시카고 대학 글쓰기 매뉴얼의 마지막 장은 “포기하고 출력하라.”로 끝난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늘 부족하기 마련이고, 완벽한 글이란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이다. 시간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최선을 다한 후, 마지막에는 “이 세상에 완벽한 글이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최종 편집, 출력, 제출 등을 제시간에 마무리해야 한다. 이러한 ‘포기’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글쓰기의 과정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쓴다는 행위는 과감하게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성찰하고 모니터링하기

글을 다 쓴 후에도 끝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글쓰기 과정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자신이 글에서 수정이 특히 많이 필요했던 부분, 글 쓰는 과정에서 비효율적이었던 점, 자신이 자주 틀리거나 혼동하는 맞춤법 등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한다. 교수님이나 토론자로부터 논평을 들을 수 있는 경우 주의 깊게 듣고 기록해 두면 자신의 글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이와 같은 성찰의 내용은 이번에 쓴 글을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때 반영하고, 그렇지 않다면 다음 글쓰기에 반영한다. 자기 글쓰기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면 약한 부분에 더 집중하는 등 다음 글쓰기에서의 수정 전략도 더 효율적으로 세울 수 있다.